그저 주는 사람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행20:34-35).

지금 바울이 올라가는 길은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길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이라는 예감을 아주 강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바울의 주변에는 참으로 신실한 동역자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들을 보면 참으로 많은 이들이 친근하게 거론 되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신실한 동역자들이 왜 이렇게 많았을까요? 이유는 바울이 ‘그저 주는 사람’ 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주고, 물질을 주고, 눈물을 주고, 말씀을 주며 섬기고, 생활을 돕고, 교회를 세워주고, 자신을 허비하기까지 주었습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은 지난달 21일.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줬습니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표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두 수녀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겼습니다. 이들은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 말했습니다.

김명호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며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59년과 62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품이 참 베품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10여 년 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고,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3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은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 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돌아갈 고향 오스트리아는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지만,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습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덮어 주리라고 믿습니다.

사랑이 메말라가는 이 시대에 이런 분들이 그립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에게 진리의 길을 안내해주고, 아파하는 사람을 위로해주며, 같이 울어줄 수 있는 그런 목회자가 그립고, 그런 동역자가 그립고,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그립습니다. 저 역시 ‘그저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장봉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