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머슴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꼬리보다는 머리가 되기를 원한다. 말석보다는 상석을 좋아한다. 엑스트라보다는 주인공이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원한다. 관중보다는 박수갈채를 받는 시상식에 오르고 싶어 한다. 다스림을 받는 것보다는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기다리기보다는 조급하게 행동한다. 구속받기 보다는 자유를 선호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의 육신에 자신을 가두셨다. 스스로 공간과 시간 안에 매이셨다.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철저히 낮아지셨다. 베들레헴 짐승 구유에서 태어나셨고, 30년간을 나사렛의 목수로서 조용히 침묵의 기간을 보내셨다. 예수님은 가난과 단순함, 고요함과 침묵 속에서 공생애 사역을 준비하셨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나사렛에서 나무토막을 자르고 못을 박으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셨다. 주님은 긴 침묵 속에서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셨다. 30년의 침묵이 지난 후 예수님은 피조물들 앞에 벌거숭이로 서셨다. 수많은 침 뱉음, , 몽둥이세례 등. 온갖 조롱과 모욕이 퍼부어졌다. 그리고는 피조물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고, 지옥의 형벌을 대신 짊어지신 채 음부에 내려가기까지 낮아지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매료되어 모든 인간적인 욕망과 명예를 뛰어넘어, 스스로 하늘나라의 머슴이기를 자청한 분들이 계시다.

사하라 사막의 성자 샤를 드 푸코는 프랑스의 귀족이요 장교였다. “예수님께서 어찌나 낮은 자리를 차지하셨던지 아무도 결코 더 낮은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말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고 일평생 좌우명으로 삼게 되었다. 그 후 모든 부와 명예를 버리고 귀족의 신분을 숨긴 채, 글라라 수도원의 머슴으로 몰래 들어갔다. 수도원 농기구를 넣는 창고에서 자면서 시키는 대로 일을 했다. 멸시천대를 받으면서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가장 비천한 자리를 찾는 것 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 뿐!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끊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찾아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바치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은 허무하다.”

그러다가 원장에게 발각되어 성인이라는 말을 듣자 더 깊은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셨다. 그곳에서도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철저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노예처럼 그들의 심부름꾼으로 사셨다. 숨은 생활, 평범한 생활, 기도와 노동의 비천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다. 그의 최후는 예수님처럼 철저히 혼자였다. 한 명의 동료도, 제자도 없이 홀로 이교도의 한 소년병의 총탄에 맞아 순교를 하셨다.

일본의 니시다 덴꼬는 회심 후 양복을 벗어버리고, 노동복을 입고, 삭발하고 맨발로 거리를 나섰다. 길을 쓸고, 남의 집 문풍지를 발라 주고, 창고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을 고쳐 주었다. 밤이면 이불 한 장을 접어 깔고 덮고, 먹을 것은 밥통에 남은 것을 긁어 먹고,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시키는 대로 하고, 가장 낮은 자리에 앉으려 했다.

한번은 어느 큰 회사에서 그에게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강연은 하지 않고 취사장에서 김치와 무를 다듬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틈이 있으면 식당의 유리창을 닦고 물통을 들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다녔다. 회사 측에서는 어이가 없어서 니시다를 나무랐다. 그러자 높은 자리에서 강연하는 것은 내 격에 어울리는 일이 아닙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스스로 하늘나라의 머슴이기를 자청했다.

한국의 성자로 불리는 이세종 선생은 평생 머슴살이를 하면서 모은 재산을 팔아 남을 구제하는 데 다 써버렸다. 이에 그곳 지방 사람들이 몰래 송덕비를 세우자, 집집마다 다니며 그 비를 없애 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리고는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을 못 받는다고 하면서 결국은 그 비석을 땅에 파묻어 버렸다. 다 떨어진 거지 옷을 입고 다녔으나 깨끗이 빨아 입고 지냈으며, 길 가다가 헐벗은 사람을 보면 그마저 벗어 줬다.

흑인 최초의 수도사였던 마르틴은 이 빗자루는 저를 천국으로 이끄는 겸손의 계단입니다라면서 일평생 수도원의 청소부로 살아갔다. 어느 날은 괴팍한 치릴로 수사가 검은 똥강아지라며 방청소를 빨리 해주지 않는다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 부었다. 하지만 마르틴은 감정을 억누르고, 청소를 말끔히 해주었다. 그리고는 검은 똥강아지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이름이라고 말했다. 치릴로 수사는 그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아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였다.

비록 이 땅에서는 머슴처럼 살다 갔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기둥으로 쓰임 받을 분들임에 틀림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서 대접만 받고자 한다. 그러기에 주님 때문에 겸손하게 섬길 줄 아는 충직한 머슴같은 이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5-6).

이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