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보인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신경림


 

배려의 시간을 지나며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믿음을 더하면 우리가 보는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누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 말에 긍휼과 배려를 더한다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훨씬 깊어질 것이다. 가장 빛나는 별은 어두움이 짙을 때에 더 빛이 난다. 무언가 내 상황이 어두워지는 것 같으면 겁부터 먹는 인간의 속성이 나타날 때에는 조금 무디어진 늙은 눈을 갖자. 부정적인 생각이 차오르면 잠시 숨을 고르고 그것들을 주님께 도움을 구하며 걷어 내보자. 그리고 아픔이 느껴지거든 조금 울다가 가장 빛나는 별을 눈물 찬 눈으로 소망해보라. 그때 주님은 견디어가는 나를 보며 미소 지으실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지는 느낌, 그것은 모든 것으로부터 조금 초월되고 여유 있어진 넉넉함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은 말에도 발끈하여 감정을 드러내고, 부르르 속을 끓이며 누군가를 저주하듯 미워하는 소인배 같은 나의 영혼의 눈을 조금 늙게 하면 어떨까.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은 한마디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것과 비슷한 생각을 담고 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적극적 관점에서 표현하는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7:12)고 하신다. 사랑과 긍휼을 실천하기 위해 배려는 해야 하겠지만, 남의 입장도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덮어놓고, 눈감고 모든 것을 덮어 주라는 말은 아니다. 옳고 그름은 분별해야 한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우리들 자신이 주님과 이웃들로부터 엄청난 배려와 긍휼을 힘입고 사는 존재라는 사실에 있다.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또한 나를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이웃들이 묵묵히 내 동료가 되어주고 가족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기에 우리가 공동체로 존재한다.

일찍이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남이 하는 짓을 참아줄 수 없을 때, 당신에게도 남이 참아주었던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도 누군가 나의 무례함과 거친 행동들을 참아 주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의 미성숙함과 어리석음을 기다려주고 참아준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더 깊이는 나를 넉넉히 품어주시고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의 배려적 사랑이 있었기에 내가 존재함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을 차지하는 용기

우리가 원수 같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나의 자랑이나 자기만족이 아니어야 한다. 나는 너를 배려하는 데 왜 알아주지 않느냐고 불평할 필요도 없다. 나도 그도, 이미 주님의 엄청난 배려와 긍휼로 이 땅에서 가련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긍휼은 심판을 이긴다’(2:13)고 하셨다. 우리가 받아야 할 수많은 심판의 이유들은 주님의 긍휼로만 가능하다. 대부분의 배려와 긍휼들이 얼마나 내 중심적인 것들인가 헤아려 보라. 가끔 누군가를 떠올리며, 내가 그를 엄청 봐주는 것처럼 혼자 으스대는 우스운 꼴을 할 때가 있다. 주님이 보실 땐 얼마나 속물처럼 보일지, 떠다니는 하찮은 먼지와 같을지.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온 인생을 바쳐 주님을 차지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보면 단순하고 단조롭다. 기도하고, 절제하고, 주님을 잊지 않으려고 홀로 있는 날들의 반복. 그들의 삶을 걸어가 보면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결국은 거룩한 별처럼 빛이 나서 세상의 어둠을 밝히며 수도 없이 반짝이는 것을 보게 된다.

로사(1586~1617)는 스페인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신앙이 깊었던 그녀는, 평생 단식과 고행, 자선과 기도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주님의 수난과 고통을 나눠질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일주일에 3일은 물과 빵만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좋아하던 과일도 먹지 않았다. 침대를 버리고 바닥에 돌을 깔고 자거나 밤새 기도를 바치는 등 극심한 고행을 스스로 실천했다.

부모 역시 독실한 신자였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신앙에만 매달리는 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미모를 지녔지만 이마저도 못마땅해 하며 머리를 짧게 자르고 얼굴에 재를 묻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거나 찾아오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일들 때문에 한때 미친 사람으로 취급 받기도 했다. 하지만 묵묵히 자신만의 신앙을 이어갔다. 또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헌신하면서 집 근처에 작은 방을 지어 갈 곳 없는 이들을 불러다 돌봤다. 어린 나이에 단식과 고행으로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녀는 3년간 투병생활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기도하고, 절제하고, 이웃을 돌보고. 부모마저도 이해가 안 되는 사람. 오늘날로 말하면 정말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남들보다 예쁜 얼굴을 만들고 싶어서 성형을 하는 세상에 무슨 소리.

그런데 로사는 알았던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주님의 성품을 그대로 닮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그 길을 빨리, 어서 차지하고 싶어서 사랑에 방해되는 것들은 단칼에 버리고 끊어버렸던 것이다. 하늘의 지혜를 알아서 그 지혜로 삶을 다스린 분이시다. 그 비밀을 너무 잘 알아도 주님 사랑합니다.” 말만 하는 허풍쟁이들과는 너무도 다른 용기와 결단을 가졌던 그녀기에 주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라고 칭찬을 듣고 거룩함을 입었다.

별 헤는 순간을 기다리며

사랑을 차지하려면, 사랑하면 된다는 샤를드 푸코의 말이 왜 이토록 멀고 어렵고 힘들고 지칠까. 사랑하는 주님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도 절실하다. 인생을 오래 살아 나이가 많아지면 눈이 어두워진다. 가까운 것도 잘 보이지 않고 침침해 지는데 이를 노안(老眼)이라고 한다. 반면, 젊을 땐 눈이 밝다. 작은 것도 멀리 있는 것도 다 보여서, 보이는 대로 말하고 지나 보낼 것들도 혈기 가득하여 말하기도 한다. 그것을 정의감으로 잘못 알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정의감으로 포장된 혈기요 포악이며 교만이라는 것을 조금 더 나이가 먹으면 주님이 알게 해 주신다. 그리고 자주 부끄럽게 하신다.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면서 다듬고 성숙하게 변화시켜 가시고 성장케 하신다.

도대체 별이 어디 있냐고 주님께 따지듯 묻는 우리에게 주님은, ‘네 눈이 어두워서 못 보는 것이라고 알려주어도 우리는 주님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 어린 아이와도 같다.

그런데 영혼의 나이를 성숙하게 먹으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반짝이는 별들은 수도 없이 많아진다. 요리조리 살피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피곤한 눈도 적어지고, 주님만 보고 싶은 단조로움도 꽤 일어나기도 한다. 죄성과 정욕으로 피곤한 혈기와 쓸데없는 자존심, 그리고 내 눈이 밝은 것 같은 착각은, 결국 내가 아주 교만하고 그 교만으로 인해 아집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우리가 자주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을 볼 수 있다.

주님을 닮은 이웃이라는 별, 가을 하늘 아래 바람을 타고 작은 나뭇잎이 살짝 흔들릴 때 빛나는 오묘한 주님의 솜씨, 그리고 어서 변화되고 싶은 내 안의 작은 열정들. 주님을 향한 숨겨진 그리움들. 우리가 다 볼 수 있는 반짝이는 별들이다. 풀과 나무사이, 사람들 사이, 내가 하는 지치고 무거운 일들 사이에서도 빛나는 별들을 볼 수 있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려서 어둡고 칙칙했던 내 맘을 환하게 밝혀줄 기쁨도 누리게 될 것이다.

나는 주님의 긍휼과 배려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날카롭고 예리한 척 속았던 마음과 생각을 무디게 내려놓고, 부족함을 고백하며 무릎 꿇는 길 밖에 없다. 그 순간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기쁨의 별들이 내 칙칙한 마음과 환경에 은총으로 임할 것이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