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고민

오랜 준비도 없이 그야말로 갑작스레 캄보디아의 선교현장에 뛰어들어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면서 달려온 지 이제 5년째다. 상당히 긴 시간이지만 돌이켜보니 순식간에 흘러간 듯하다. 처음 도착했을 당시 오래된 어느 시니어선교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래도 5년은 해야 비로소 선교 좀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군대의 말년 고참병이 신병에게 조언하듯 말했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선 나라에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처지인지라 그러한 말들도 진지하게 귀담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5년이 넘어가니 선교가 조금은 보이는 듯하다. 그래도 어떻게 해야 선교다운 선교를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주변 여러 선교사들의 사역 내용들을 둘러보게 되고 좋은 점은 배우고 부정적인 내용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 선교사들의 선교사역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영적인 면이 그러하다. 선교사 자신이 영적 훈련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는 섬기는 사역지 교회에서 현지인 성도들에게 깊이 있는 내용들을 가르치는 것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비록 많은 후원금으로 멋있게 교회나 학교를 건축해도 영적으로 깊은 말씀이 공급되지 않은 선교는 기초가 부실한 건물과 같다. 여러 선교사들이 사역 확장이나 교회 건축 이런 면에는 온 신경을 쏟으나, 고상하고 깊은 말씀을 가르치는 데는 애를 쓰거나 고민하는 모습이 별로 안 보인다.

몇 년 전 이곳 한인선교사회 세미나에서 어느 강사가 강의 중에 뼈 있는 말을 하였다. 미국 선교사들은 일을 하나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떠나고 나면 무언가 남아 있고, 한국 선교사들은 무언가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막상 떠나고 나면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이다. 그 말 한 마디가 한국 선교사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캄보디아 선교사회 단체 메신저 방에서 어느 선교사들은 교회 건물은 잘 건축했는데, 사역자가 없어서 사역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올리기도 한다. 말씀으로 사역자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 결과다.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만 하고 보다 더 높은 곳으로 이끌려는 간절함이 없다면 그런 선교사가 세운 교회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이들의 신앙이 더 높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말씀들을 준비해서 가르치고 먹여야 한다. 그러나 선교사가 영적 훈련이나 연단받은 부요함이 없이는 가르칠 수 없다. 자신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그들에게 줄 것인가. 선교의 진정한 가치는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보배들을 공급하고 전파해주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런 귀한 것들은 가르쳐주지 않으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교를 하다보면 정말 물질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자신이 먼저 받고 배우고 맛을 본 하늘의 영적 보화들을 주님의 심정으로 그들에게 가르치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면, 나중에는 그런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교회 건물도 세우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선교사들이 오지만 안타깝게도 진정한 선교의 가치관으로 무장된 분들이 드물다. 또는 은퇴 후에 선교 명분을 가지고 여가를 이곳에서 보내려고 오는 평신도들도 보인다. 느지막이 들어왔기에 언어공부도 아예 포기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는 관심도 없어 보인다. 본질에 충실하지 않고 외형적인 것에만 분주하다.

어느 선교사는 한국말 찬송과 워십댄스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가사의 의미도 모르고 찬송을 따라 부르고 춤을 춘다. 그리고 보여주기식으로 한국에 데리고 가서 파송교회에서 공연을 시키면, 선교지의 속사정도 모르는 청중들은 감동스럽다며 박수를 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에 그러한 일들도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일이라면 기억해주실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들의 영혼에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답답한 것은 그러한 일들을 하면서 스스로 이런 것이 선교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께 진실로 감사한 것은 오랜 목회생활 속에서 모나고 부족한 나를 연단하시고, 훈련을 받게 하시어 그 경험이 영적 자산이 되어 선교 방향과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사역에 앞서 영적 훈련으로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기까지 우리의 삶과 인격이 성숙되고, 영적으로 깊이 있는 좋은 꼴을 먹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기에 다른 일보다 언어공부를 우선으로 한다. 알맹이가 견실하고 영원히 남는 선교, 이 땅에서 거룩한 나그네로 살다가 그날에 얻을 열매를 보기 위한 선교이고 싶다.

박이삭 목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