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이 어디 있느냐

26개월 동안 사업 비자를 내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3시간이나 떨어진 댈러스까지 행정적인 업무를 보기 위해 다녀오기도 하고, 인수받을 가게에서 계산원으로, 재고조사 등 밤낮으로 일을 하였다. 각자 다른 업무시간을 차 한 대로 움직여야 해서 남편을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토막잠을 자기도 하였다. 잠 잘 시간도 부족한 형편에 세 자녀들을 새 학교에 등록시키는 절차와 학년 준비를 위한 물품 구입까지 해야만 했다. 집안 정리를 할 시간도 없어 이사 온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상자를 풀지 않은 것도 있었다. 계속되는 과다 업무로 만성피로에 시달렸지만 새로운 사업장에 대한 목표가 있었기에 힘든 상황을 견딜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가게를 파는 한국인 사장님의 의견대로 최종 계약서를 수정하여, 사인을 해 달라고 하였는데, 일주일 후 사장님으로부터 커피숍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가는 길에 남편이 당신 혹시 사모님이 다른 말을 해도 당황하지 마.”라고 하였다. 사장님 내외의 권유로 3시간 떨어진 이곳까지 이사를 왔고, 아이들 학교도 옮긴 터라 설마 무슨 일이 발생할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약속 장소로 나갔다. 하지만 남편의 예감대로 계약을 못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E2용 계약서에는 실제 계약 조건이 명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분명 사장님은 남편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E2용 계약서를 따로 써준다고 하는 약속을 먼저 하셨다. 모자라는 금액에 대해서도 10년 저리 할부를 해 주신다고 제안도 하였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여러 번 직접 찾아와서 주유소 사장님과 대화를 하였다. 터무니없는 금액을 부르며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거나 가게의 실수익도 부풀려서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매일 새벽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인처럼 보였기에 믿고 이사까지 하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사장님 말과 달리 사모님이 이중 계약서는 써 줄 수 없다고 하여 할부 금액만큼 월세로 고치는 위험까지도 감수하였다. 10년 동안 내는 원금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계약서임에도 자신의 세 자녀를 걸고 10년 후에는 꼭 돌려주겠다는 사모님의 말을 바보처럼 철썩 같이 믿었다. 사실상 수정한 계약서는 우리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최종 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 없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년 5월이면 만기되는 학생비자를 사업비자로 바꿔 합법적인 신분을 유지하려던 계획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떻게 신분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막막했다. 이중 계약서가 불법임을 느슨하게 넘겨버린 의롭지 못한 모습도 자책이 되었다.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온 사장님 부부에게도 큰 책임이 있건만, 말로만 미안하다는 태도에 그동안 참아왔던 불평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사장님 내외는 처음엔 일에 지쳐 사업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니며 여가를 즐기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국과 LA 등지로 여행을 다녀온 후, 갑자기 돌변하는 그들의 모습에 이용당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음 날부터 이곳저곳 다른 가게를 알아보러 다녔다. 그 과정에 우리는 이곳 한인들이 먹이 사슬처럼 먹고 먹히는 관계로 얽히고설켜 있음을 알게 되었다. 40여 년 전 이곳에 맨 처음 자리 잡은 G사장이란 분도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아는 사람을 미국으로 오게 하여, 그들이 가져온 돈을 현지 실정을 모르는 그들에게 비싼 돈을 받고 좋은 사업체를 양도하는 것처럼 하여 팔아먹고 부를 축척했었다. 그와 같은 수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한쪽에서는 손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고통에 신음하는 한인들도 많았다.

다행히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지혜와 긍휼한 마음을 부어주셔서 그들로부터 조용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마음고생을 통하여 주님은 세상을 향한 나의 욕심을 회개하고 내려놓게 하셨다. 우리의 고통을 함께 울어주는 진실한 자매와 교회와 목사님도 만나게 해주셨다. 아직은 여러 가지로 검토 중이지만 더 낮은 가격에 사업체와 집, 1300평 정도의 땅까지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셨다. 더군다나 23년 동안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아 주일 성수에도 문제가 없었다. 16개월 전, 가게 아주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아침 7시에서 낮 12시까지만 문을 열어 현매상은 적었다. 그래도 주변에 많은 거주민이 살고, 다른 가게는 3-4Km 떨어져 있어 얼마든지 성장 가능성이 있는 가게였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힘입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실감케 된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21).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보물을 쌓기보다 땅의 것에 집착하여 세상의 재리와 욕심에 이끌려 큰 시험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의 욕심에 마음이 빼앗겨 24시간 운영하는 가게를 인수하여 무리하게 감당하려고 했었다. 영적으로 너무 안일해져서 자칫 주일성수를 하지 못 할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데도 어리석게도 뛰어들려고 하였다. 좀비처럼 같은 동포들의 돈을 취하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이나 더 많은 돈을 받으려는 욕심으로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린 그 사장 부부 역시 세상적인 부에 마음이 빼앗긴 것이었다.

이번 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아 살면 평화가 깨진다는 산 체험을 우리 부부는 톡톡히 치렀다. 감사한 것은 영원히 낡지도 않는 하늘나라의 기업을 소망 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너무나 쉽게 잘 잊어버린다. 손해를 보더라도, 희생을 하더라도 하늘나라 믿음의 유산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세상의 합법적인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그토록 바동거리면서도 정작 하늘나라 신분에 합당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애쓰지 않았던 나의 안일함도 진실하게 회개하게 된다. 뜨거운 바람에 곧 말라버리는 풀과 같은 헛된 부를 자랑치 말고, 소유를 잃어버릴지라도 낮아짐을 자랑하라는 야고보 기자의 말씀이 나의 욕심에 채찍질을 가한다. 네 마음의 눈을 들어 하늘을 다시 바라보아야겠다. 모든 소유를 다 팔아 하늘나라의 보화를 얻기까지 끊임없이 내려놓고, 포기하고, 버리는 일에 열심을 내야겠다.

강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