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와 마침표

숲 속에서 벌레들의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을 듣는 것은 삶의 소란한 소음으로부터 우리 영혼을 쉬게 한다.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반짝이는 햇살이나 들꽃을 건드리는 바람도 우리의 지친 영혼을 쉬게 한다. 종종 짙은 클래식 음악도 초록과 하늘색이 어우러진 수채화도 우리를 쉬게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안식을 주는 것은 천상에서 들리는 듯 온 영혼에 퍼지는 찬양이다.

이는 만물을 만드시고 그 만물의 감사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나를 직접 그분의 형상을 좇아 만드시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고통을 기꺼이 받으시며 죽어 가신 사랑의 예수님을 내게 주셨다는 감격이 늘 새롭게 일어나게 하는 까닭이다. 밀레의 만종그림 속 순박한 농부 부부처럼 하루 일을 마치고, 들려오는 교회의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성실히 일하고 그 모든 시간과 힘을 주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그 순간이 바로 쉼의 시작이다.

쉼이 없으면 피곤해진다. 아무리 좋은 명문도 쉼표를 무시하면 스트레스를 주는 난문이 된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도 악장 사이의 쉼표가 없다면 그 이상의 명곡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이제 좀 쉬어야 할 육체는 감기 같은 바이러스의 침입을 허락하면서까지 쉼을 요구한다. 쉬지 않고 달려갈 지침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을 명확히 아셨던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인생이 고해를 항해하는 외로운 조각배임을 잘 아셨던 까닭이다.

분주한 일 중에도 주님 안에서 쉼을 얻는 일은 부지런한 벌목공이 도끼질을 멈추고 날을 가는 휴식의 일과 같다. 하던 일이 망가져 뒤죽박죽이 되었을 때에도, 악습과 죄로 인해 곤고해졌을 때에도, 인생의 큰 실패 앞에 엄습하는 절망감으로 인해 극단적인 생각이 가득 일어날 때에도, 주님 무릎 아래 앉는 일은 은혜와 진리 안에 막달라 마리아가 누리던 영혼의 쉼표이다.

예수님은 그런 쉼표가 필요한 모든 영혼들의 마침표시다. 주님께 나가 겸손히 무릎 꿇고 앉으면 주님은 우리가 망쳐놓은 일의 마무리가 되신다. 우리의 불안과 속상함의 이유는 일과 현상에 있지만 주님의 관심은 그곳에 있지 아니하다. 쉼이 필요한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관심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마침표를 잘 찍으려 노력하고 그것이 실적과 업적이 되기를, 능력의 입증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 안의 쉼표이다. 그것을 불평하는 마르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0:42)

주님 안의 쉼을 택한 마리아는 골고다 언덕까지 나간 제자가 되었고, 주님은 그녀의 마침표가 되셨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도 이 쉼은 필요하다. 부인한 베드로에겐 더더욱 필요하다. 무너진 다윗에게도 이 쉼은 절대 필요하다. 주님 안의 진실한 쉼표는 주님의 마침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