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월례 조찬기도회에서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 효율성과 결과 중심의 비즈니스화된 목회, 지나친 외형적 성장 집착, 물량주의, 개교회주의 등에 대해 반성했다.

이날 목회자 및 성도 200여명이 참석한 행사에서 림인식(노량진교회), 방지일 원로목사, 전병금(강남교회) 목사는 “한국 교회는 양적 부흥에 몰두해 목회를 ‘경영’으로, 목회자를 ‘CEO’로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개탄하고 “비난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수용해 목회자의 본분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교회를 찾으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교만일 수 있지만 교회가 완전해지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종교개혁자들이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쳤던 것처럼 우리는 늘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교회의 변화와 갱신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애정도 없이 한국 교회의 현실을 비판만 하는 것 또한 문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끌어안고 조금씩 완전한 교회를 현실화시키도록 노력하자. 지금의 한국 교회는 현실적인 파급력이 거의 없는 말잔치만이 풍성한 게 사실이다.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선 대형교회가 먼저 자신의 권력과 기득권을 내려놓는 솔선수범이 요청된다”고 호소했다.

최근 서울 강남 교회들의 폭력사태가 세상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교회는 벌어진 폭행사건으로 담임목사가 눈 주위 뼈가 부러지는 전치 4주의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해 있고, 전직 부목사와 현직 부목사는 폭행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또한 대치동 강남교회 일부 교역자들은 모교회 안팎에서 이 교회를 비방하는 전단지를 배포하다 교회 관계자들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으며, 경찰은 강남교회 김성광 목사의 관련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별히 새해를 맞이한 지금, 어느 때보다 더 낮은 자세로 회개와 거룩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교회 간판을 내리라

그렇잖아도 ‘개독교’라는 사회의 비난에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되지 못한 허물을 회개하고 아파하면서 겸양해야 한다. 이런 반성의 토양 위에서라야 이웃사랑과 복음 전파는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폭력사건이 연중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으니 ‘교회 간판을 내리라’는 세인들의 비판에 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이런 수치는 교회가 대형주의·물량주의적 맘몬을 우상숭배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교회는 “하나님과 국민 앞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사랑과 정의가 회복되는 계기가 되게 하겠다”는 따위의 말로 끝날게 아니다.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아직도 소망교회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를 보면 서로 헐뜯기에 골몰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한 것 같아 안타깝다.

교회 내에도 많은 어려움과 복잡한 인간관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싶어 하지만, 서로 이해관계의 갈등 속에서 온전히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비록 그럴지라도 성경이 강조하는 것이 회개와 자기 헌신 아닌가.

교회에는 엄연히 교회헌법과 민주적 의사결정기구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는 순종을 미덕으로 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요체는 당회와 제직회라는 민주주의 절차가 준수되는 데에 있다. 부덕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타 교회를 흔들려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목회자의 복음삼덕

너나 할 것 없이 목회자들의 통렬한 반성이 요구된다. 목회자는 복음을 위해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로서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일부가 자기의 권위, 즐거움을 위해 목회자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목회자가 복음삼덕인 청빈과 순결과 순종에서 떠날 때 이미 탈선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목회자의 영혼은 아침 햇살처럼 맑아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는 전적으로 목회자에게 있다.

진정 예수님의 제자라면 “여우들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는 주님의 청빈을 본받아야 한다. 타락한 인간의 모든 생활은 ‘부’를 소유하려는 탐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모든 불행과 화가 시작된다. 기독교는 청빈(淸貧)의 정신으로 승리해야 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고 협착한 길을 걸어서 자기를 부인하고 청빈의 십자가를 지고 겟세마네 동산을 지나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야 한다.

목회자의 진정한 힘은 권력이나 술수가 아니라 깨끗한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순결함에 있다. 하나님을 향한 순결이 신앙의 기초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다(마5:8). 정욕과 죄성의 지배를 받아 더러워진 마음과 행실을 철저히 참회하고 꾸준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만 순결해질 수 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順從)해야 한다(삼상15:22). 가장 영웅적으로 순종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려면 반드시 많은 괴로움을 인내해야만 한다. 부분적으로 순종해서는 안 되고 자기의 생각, 의지를 온전히 버리고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대신 순종을 잘 하면 빠르게 성화(聖化)되는 복을 주신다. 이것이 목회자에게 주시는 분복이다. 목회자는 다른 욕심 버리고 이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큰 교회, 큰 목회만 선호하고 높이 평가하는 세상에서 비록 작지만 소박하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양들의 영적인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목회자 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목회자들을 흔히 주변에서 능력없다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를 목회자로 부르신 주님도 과연 그렇게 평가하실까?

“주님, 크고 부요한 목회가 세속화 되는 원인이 아닙니까? 맡겨주신 양들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들이 되게 하소서!”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