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처음 언어 공부를 하기 위하여 선교사들이 모이면 자주 언급되는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현지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삶의 모습들에 대해서 흉을 보듯이 비판했다. 이곳에 온 지 나보다 몇 년 앞선 선교사님과 같은 주제로 여느 때처럼 대화하던 중이었다. 그분이 무게 있는 목소리로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라며 넌지시 뼈 있는 말씀을 하였다. 순간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최근에 가까운 선교사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자신이 근래에 겪은 황당한 경험을 하소연하였다. 한국에서 의료선교 팀이 자신의 사역지에 방문하기로 해서 그 마을의 메품(마을 이장)을 찾아갔다. 먼저 허락을 받고 서류에 사인을 받는 게 이곳의 관례이기 때문이다. 메품에게 선물을 사들고 찾아갔더니 은근히 뇌물()을 요구하면서 이런저런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며 서명하는 것을 미루더라는 것이다. 자신의 마을에 좋은 일로 봉사를 해주겠다고 찾아와서 인사를 드리면 오히려 감사히 생각하고 협조를 해야 하는데, 노골적으로 돈을 바라는 행태를 보고 있노라니 무슨 이런 사람들이 다 있을까 하고 어이가 없고 할 말을 잃었다 한다.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가. 그러나 그런 것을 부끄러움으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캄보디아는 정치체제가 입헌 민주국가지만 과거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교회를 건축하고 예배를 드리려면 종교부에 예배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외국의 의료선교 팀이 와서 의료봉사 한번 하려고 해도 사전에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다. 만약에 신고를 안 하면 비록 머나먼 곳에서 왔다 할지라도 경찰이 와서 엄포를 놓고 제지하면 결국 헛수고를 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기도 하다.

문맹률이 높아서 시골에 가면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장년들도 대다수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아직도 길거리 아무 데서나 외국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노상방뇨는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다. 물론 선진국처럼 화장실을 잘 갖출 형편은 못 된다. 어느 정도는 타인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데 사람이 옆에 지나가도 상관하지 않고 실례를 거침없이 한다.

어느 때는 어두컴컴한 새벽에 집 근처 도로를 지나가는데 젊은 청년이 자신의 집 앞에서 보란 듯이 방뇨를 하고 있었다. 내가 바로 앞을 지나가고 있는 데도 몸을 돌리거나 중단할 생각을 안 하고 태연하게 볼 일을 끝까지 다 보았다. 나는 아연실색하였다. 이들은 수치스러움이 뭔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고, 선교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겹치자 하루 종일 우울했다.

길거리의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시민들의 교통질서나 쓰레기를 아무데나 함부로 던져버리는 습관들을 보면 시민의식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사회의 공중도덕과 기초질서가 나아질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지도자들이 국민들을 정책적으로 계몽하고 선도해야 하는데, 오직 자신들의 권력 장악과 부정부패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다.

처음에는 그 모든 상황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그런 장면들을 목격하였을 때 우울하고 암담하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이런 환경과 분위기에 익숙해져서인지 별로 이상하지도 않다. 또한 그렇다 할지라도 내가 진정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고 앞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할 땅이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사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나라에 모든 것이 부족하기에 이곳에 올 수 있었지, 우리보다 모든 면이 더 낫고 발전된 국가요 백성들이었다면 선교사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을 것이다.

속죄 복음이 죄인들에게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이 백성들에게 영육 간에 많은 것이 결핍되어 있고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선교사들을 보내신 것이다. 만약 모든 것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발전되어 있고 부족함 없이 영육 간에 풍성하다면 선교사가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오히려 주눅이 들어 이 땅을 밟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으므로 감사하고, 이들에 대해 보다 더 간절한 기도와 함께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조선 땅에 파송되어온 최초 선교사가 조선 땅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직접 눈으로 살펴본 첫 소감을 편지에 써서 본국에 보내기를 이 땅에는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라고 했다는 글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소망이 없었기에 더더욱 선교사가 필요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어두움이 가득한 조선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었겠는가. 선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지극히 부족한 나를 이 땅에 보내셔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들을 깨우치고 소망을 가질 수 있게 섬기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영광을 올려드린다.

박이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