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살다

사랑은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영혼의 성향이고

힘이며 원동력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영혼을

하나님과 결합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지닌 사랑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하나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그분께 집중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랑의 산 불꽃

가야 할 길

주기철 목사의 막내아들 주광조 장로는 아버지가 마지막 검속을 당하는 모습을 이렇게 증언하였다.

일본 경찰이 아버님을 잡으러 왔을 때 아버님은 툇마루 기둥을 붙잡으시고 가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끌어안고 목사님, 지금 문 밖에 교인들이 와 있습니다. 목사님은 개인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시면서 함께 우셨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그래,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지요.’ 하시곤 두 분이 손을 잡고 오랫동안 기도하신 후, 할머님께 하직인사를 하시고 성경 찬송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처음부터 순교하기로 정해진 사람은 없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기도를 드린 후에야 십자가의 길로 나갈 수 있었다. 주기철 목사님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고문이 무서웠고 죽음이 두려웠을 것이다. 다만, 고문이나 죽음도 막을 수 없는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사랑의 열정이 있었기에 배반이 아닌 순종의 길을 선택했다. 비단 주목사님 뿐 아니라 순교의 길을 간 모든 신앙인들의 삶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은 사랑이었다. 예수님에 대한 그 사랑이 그들을 목숨까지 버리게 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를 그 무엇에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여 살게 하신다. 그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안다. 죽음과도 같은 그 사랑의 힘을.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에 합일 되어 온전히 주와 하나 되기를 소원하고 광야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최후의 목적과 목표는 사랑의 합일이기에, 지금 우리가 조금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낙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십자가 앞으로 전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야 할 길을 앞에 두었던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는, 어린 송아지를 넘어 서서 나아갔다. 그 길만이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버리고 끊는 아픔과 단호함이 뒤따르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예수님처럼, 잔을 옮기고 싶으나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구하는 것, 그 사랑의 힘이 솟아오르는 일이다.

목적이 이끄는 사랑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길을 무작정 떠났다. 그가 평생 살던 고향을, 하나님의 명령 한마디로 버리고 떠나는 순간이었다. 아브라함은 약속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며 뭍별과도 같은 민족의 조상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또한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모든 걸 버려두고 길을 떠났다. 그들은 3년이라는 시간동안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 거룩한 인격과 빛을 온전히 닮는 성화의 길로 갔고, 결국 초대 교회 복음의 기초석이 되었다. 말씀대로 사람을 낚는 참 어부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도바울 역시,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고 근엄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부터 깊은 사랑에 눈먼 자가 되어 멀고도 험한 복음 전도자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의 고생과 수고를 보노라면 보통의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죽음과 고난의 길이었다. 나는 죽고 예수님만 살리는 은혜의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의 것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거룩한 삶의 여정들뿐이었다.

1946910일을 마더 데레사는 영감의 날이라고 부른다. “내가 캘커타에서 다질링으로 가는 기차 속에서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선명하게 나의 소명 안에 또 다른 소명을 느꼈습니다. 그 메시지는 명백했습니다. 나는 우리 수도회를 떠나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을 도와주는 데 헌신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명령이었습니다.”

익숙하고 안락한 곳을 떠나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을 목적으로 명령받은 그녀는, 죽는 날까지 가난하고 병든 이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사랑하다가 천국으로 갔다.

이 밖에도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사연과 목적은 오직 예수님께서 그들 각자에게 주신 영감의 날이 되어 각자의 삶과 환경을 지배했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나님은 거룩한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게 하셨고, 철저하게 낮아지게 하셨으며, 온전히 사랑하도록 하셨다. 누구에게라도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게 하셨고, 말씀위에 서게 하셔서 믿게 하심으로 결국 말씀 안에 이루어주실 약속을 이루어 주셨다.

사랑에 사는 삶

예수님을 처음 만나면서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면서 날마다 경험되어 지는 은총은, 주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이다. 어쩌면 진실한 회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가슴 저미는 마음으로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베드로와도 같은 고백이 아닐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봉사도 헌신도 순교도 할 수 없다. 사랑의 힘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결론짓게 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목적을 만들고 그 목적은 우리 삶을 거룩함으로 변화하도록 한다. 이제는 사역에 사명에 지치고 힘이 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지치는 날, 어제 지은 죄를 또 짓고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여 절망으로 울고 싶을 때, 그 순간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는 깊은 사랑의 고백은,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주님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다가 그분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합일의 기쁨, 그것이 우리의 목표요 기쁨임을 성경이 확증하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위험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아무것도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결코 끊을 수 없다. 결코 끊을 수 없다.

우리의 사랑은 거룩하고 온전한 것이다. 죄인이었던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와 거하는 은총이라니. 더구나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 우리를 지배하여 말하게 하고, 행동하게 한다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찬 감격의 순간이다. 죄와 정욕을 벗어 버리고 얻어지는 은총, 그래서 누리는 평강의 힘. 그 놀라운 기적과도 같은 일을 우리는 광야 여정을 마치는 그날 누리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고, 의로 여김 받게 하시다가 의롭다 칭하시고 마침내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가 할 일은 역시 정해진 수순처럼 이어진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죄와 싸우되, 마귀와 세상과 거칠고 사나운 환경을 넘어서서 달려가야 한다. 비록 약하고 흔들리지만 내 영혼을 위해 예비해주신 것들을 바라보며 힘을 내고 전진해야 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몫이라고 하였다. 더 많이 사랑한 자는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자기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하였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믿으며 나아가면 된다.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다가 그분과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는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높여 드린다. 나아가는 광야 여정에 하나님 사랑이라는 거룩한 목적이 있어서 우리들은 행복하다. 우리들은 주님의 상급이다. 우리가 할 일은 더 주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하다가 죽기라도 할 사람들처럼 절실하게, 주님 사랑하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일은 죽음과도 같이 강하다. 아무도 그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우리는 영원히 주의 것이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