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만 의지하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 그 과정은 참으로 혹독하다. 이정도 했으면 깨달았으니 그만 하셔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하나님의 훈련은 멈춤이 없으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피도 눈물도 없으신 냉정한 분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인간이 어떤 존재임을 알게 되면 그런 의문은 가신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수없이 경험했어도, 뒤돌아서면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기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다. 나 역시 지독히도 하나님보다 자신을 믿어왔다.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몇 가지 악습을 고치고자 꽤 노력했다. 평생숙원사업이던 새벽기도도 성공했고, 좋아하던 텔레비전 드라마도 딱 끊었다. 이렇게만 계속된다면 영적 위인들같이 흠잡을 것 없는 반듯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환경과 사람에 의해, 혹은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어느 순간 열정이 식고 목표의식도 희미해지자 끊은 줄 알았던 악습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휴대폰을 없앴다가 다시 갖게 되면서 건전하고 꼭 필요한 일에만 사용하자 결단했는데, 불필요한 검색과 영상 시청으로 낭비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위기의식을 느끼며 절제해보려고 노력했지만 한 번 무너진 탑은 다시 쌓기 어려웠다. 영적 생활에 무기력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작은 일에도 의미를 찾으며 기뻐했는데 하나둘씩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 잘 이해하지 못했고, 나에게도 이런 순간들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당황스러웠다.

슬럼프가 왔을 때 극복했던 방법들을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막막해할 때 하나님께서 한 말씀을 주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9).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참 많은 고난을 당했다. 성경 인물 중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수고를 넘치도록 했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매를 수없이 맞고, 돌로 맞기도 했다. 여러 번 전도 여행을 하며 깊은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동족과 이방인들에게 위협을 받기도 했다. 밥을 굶는 것은 기본이다. 잠도 잘 자지 못했다. 무엇보다 교회를 위해 염려하는 마음이 늘 묵직한 짐처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복음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그런데 이 고난이 얼마나 심했던지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질 정도였다. ‘감당치 못할 고난당할 즈음에는 피할 길을 주신다.’는 믿음까지도 무너졌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죽을 날만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기쁨도, 고난을 통해 얻는 천국의 상급에 대한 소망도 생기지 않았다.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는 영광스러움도 이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사형선고라는 단어는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방법으로도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던 바울의 절박한 심정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단순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비참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천하의 사도 바울도 인간이기에, 아직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이 남았던 것일까. ‘사형선고의 처방전은 의외로 너무도 쉽고 단순한 것이었다.

내게 주신 처방전은 사도 바울과 같았다.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죄악에 빠졌을 때,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신의 무력함과 비참함을 인정하기 싫어 어떻게 하면 넘어지지 않았다는 듯이 일어설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영적 스승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광야를 통과하는 분들은 나는 재능도 있고 할 만한 무엇도 있다. 나는 얼마든지 하나님 의지하면서 일할 수 있다.’ 그러면서 담대하게 해요. 그런데 많이 훈련받아서 자아가 다 깨어진 사람은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해요. 광야를 통과시키는 이유가 바로 빈 그릇을 만들기 위함이에요. 비워져야 돼요. 우리가 뭔가 있는 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할 줄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는 망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성화된 성도들을 보며 착각을 많이 하지요. 부족한 것이 없을 텐데 뭘 기도 하냐고요. 그런데 성자들은 요한복음 15장에 나온 것처럼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 같은 분들이지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을 떠나면 아무것도 못하는 분들이에요. 그러므로 언제든지 주님께 붙어 있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요. 그분들은 완전히 빈 그릇이에요. 언제나 비워진 사람,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속이 빈 사람이에요. 거기에 하나님이 담아주세요. 순간순간 기도하는 가운데, 늘 두 손 모아서 하나님께 겸손하게 매달리는 가운데 공급받아요.”

지금 나는 광야,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받는 곳에 서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은 어렵지 않다. 그저 무릎 꿇고 엎드리면 된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구원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절망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 순간, 기적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