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의 영성, 순결
순결! 우리는 그 거룩한 용어에서부터 무언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고귀함을 느낀다. 기독교의 덕목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덕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순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성적 만족을 피하는 것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순결이란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정의 속에 불가피한 조건이 붙어야만 그 완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즉 순결이란 우리를 초월하는 선,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참된 순결은 억압이 아니고 영혼의 승화이며 진보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군분토 해야 할 것도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순결이 없이는 결코 십자가의 좁은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단은 순결, 그 거룩함에 상처를 내기 위해 지금도 사방에서 죄악의 그물을 쳐 놓고 있다.

이제 우리는 타락한 창기였다가 후에 진정한 순결함을 소유하게 된 한 여인을 통해 순결이 어떠한 것인가를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막달라 마리아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갈릴리 바다의 서쪽 막달라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몹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던 그녀는 뭇 남성과 고관들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다. 자연히 그녀의 삶은 점점 허영과 교만으로 들떴고, 마침내 이스라엘 고관들에게 몸을 파는 창기로 전락하고 만다. 성경은 그녀를 일컬어 일곱 귀신 들린 여자라고 기록하고 있다(8:2).

그녀의 삶은 비참하고 더러웠으며, 온갖 사람의 돌팔메 질을 감수해야 했다. 늘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녀는 분명 어둠의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 줄 구원자를 간절히 찾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비참한 인생. 그러나 어둠 속에도 구원의 빛은 비추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오신 주님은 죄인 중에 죄인, 마리아를 발견하셨고 잃은 양을 찾은 기쁨에 감격하셨다. 간음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지려던 사람들로부터 구원하시고, 일곱 귀신을 쫓아주시는 등 그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심어 주신다.

창녀 마리아! 그녀는 이 놀라운 사실에 감격하며 새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이제 순결의 길을 향해 길고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것은 난생 처음 자신에게 진실한 영적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며, 그분의 발치에 늘 머물러 지난날의 잘못을 눈물로 통회하는 일이었다.

더럽고 불결했던 삶이 참회와 보속으로 정결하게 되어갔고, 화려한 옷감과 사치스런 장신구들은 청빈하셨던 주님을 따르기 위해 사라져 갔다. 그녀의 허영과 교만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겸손과 사랑의 사람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순결은 곧 사랑

막달라 마리아의 변화된 삶 속에서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사건 중에 하나는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리아는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 머리에 붓고 울며 그 발에 입 맞춘다. 제자들은 비싼 향유를 허비한다고 불평하였지만 주님은 그녀의 진실한 통회를 보신다. 그리고 많은 죄를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며 이 일을 온 세상에 기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마리아는 사랑함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추한 죄인을 구원해 주시고 순결의 길로 이끄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너무나 컸다.

그렇다. 순결은 곧 사랑이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먼저는 외적, 내적 순결을 갖게 하시고 마침내는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즉 순결해진다는 것은 사랑함이 커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님에 대한 넓고 깊은 사랑을 소유하게 된 마리아는 예수님의 고난을 직접 목격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뵙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된다.

이 모두가 순결한 사랑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다.

순결함과 단순함

‘순결’과 함께 사람을 이 땅 위에서 높이 끌어올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단순’이다. 단순함은 하나님을 향해 더 빨리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순결함은 그분을 찾아 기뻐하게 한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행할 때 오로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단순함을 가지고 일한다면 그 결과가 어떠하던 간에 정로를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떠한 일을 주님의 일이라는 명분으로 시작했다가 자신의 명예와 영광으로 마침표를 찍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것은 ‘주님만을’이라는 단순성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 단순함을 간직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순결이다. 주님 앞에서의 순결, 사람들 간에서의 순결, 이것이 있을 때라야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작든, 크든 어떠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 안에 더러운 불순물이 끼어 있지는 않은지 노심초사해야 한다. 혹여 일의 성패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은 없었는지, 나의 의로움을 위해 남을 정죄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의 일이라고 명분을 내세우면서 내면의 불결함을 쉽게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유심히 성찰할 필요가 있다. 선으로 위장한 죄악이 생활 가운데 얼마나 많이 있는가!

아직도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는 순결한 사람이 아니다. 순결함은 곧 막달라 마리아 같이 죄인임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결은 너무도 귀중한 덕목임을 기억하며 죄와 타협하지 않고, 비록 넘어져도 다시 주님을 찾는 단순함을 기르자. 이것은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는 지팡이가 될 것이다.

결론

2017년이 거의 다 된 지금 막달라 마리아를 가리켜 더러운 창녀라고 돌을 던지는 사람은 없다. 그분은 지금 아름다운 성녀로 존경을 받고 있다. 마리아는 주님의 순결을 본받고자 애쓰고 힘썼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자신의 죄를 깊이 참회하자.

이와 같이 순결이란 죄인임을 깨닫고, 거룩하신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자신을 드리는 일이며, 옛 사람을 버리고 단순히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면 된다. 그리하면 순결하신 그분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가실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를 본받아 우리도 추악한 자신을 순결하게 변화시킬 결단을 하자.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을 뵙기 위해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도록 노력하자. 하늘나라는 순결한 자들에게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