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랑을 피우기 위해


민들레와 코스모스 씨가 뿌려진 수도원 옆 텃밭에 무수한 잡초들이 많이 자라났다. 잡초나 풀을 뽑기 위해 몇몇 자매님들과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작업을 하였다. 작게 자라난 연초록빛 코스모스 옆에 잡초가 바짝 붙어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처절한 생존법칙과 자연의 신비로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곧고 가지런한 꽃을 피우기 위해 이렇게 많은 잡초를 뽑아줘야 하다니.

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땀을 닦아 내는 자매님들의 모습에 새삼 감사가 나왔다. 이 수많은 잡초를 함께 뽑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린 수많은 잡초와 같은 자아도 내 노력만으로는 다 뽑아낼 수 없다. 자아를 깨뜨리기 위한 과정 가운데 거친 환경과 시험, 사람들과의 관계 등이 필수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주변에서 어려움을 주고 찔러대며, 쓴 소리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들을 통해 나의 질기고 질긴 자아와 결점들이 발견되고 깨어지게 되니 말이다.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1873-1897)는 스스로를 작은 자라고 자주 표현하면서 예수님을 따라 작은 길을 걷고자 하였다. 많은 희생이나 고행, 큰 고통을 통한 길이 아니라 단순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열정과 삶에서 주어지는 평범한 생활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일상생활은 극히 단순하며 간소했다. 또한 남들의 눈에 뛸 만한 일들을 하지 않았다. 단지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지극히 작은 일들을 찾아 매일매일 은밀하게 사랑을 실천하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채로 남아 있는 것과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것은 이웃의 짐을 함께 져주는 사랑으로까지 자연스레 이어졌다. 상대방의 부족함과 결점, 연약함 등 수많은 짐들을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였다. 이는 자신을 비천하고 낮게 여기지 않는다면 크고 무거운 십자가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여 오히려 기쁘게 여겼다.

수도원 안에는 마음이 잘 맞는 동료도 있었지만, 까다롭고 매우 불편하게 하는 수녀님도 있었다. 무례한 언어와 행실로 데레사를 자극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녀는 하나님께 호감을 사는 아주 좋은 분이야.”

이렇듯 싫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자연스런 반감을 이기려고 애썼다. 사랑은 단지 기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믿었다.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하려고 언제나 노력하였다. 중보기도를 할 때면 예수님께 그 사람의 장점과 좋은 특성을 열거했다. 그것을 예수님이 기뻐하신다고 확신했다. 더 나아가 기도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랑실천 할 기회를 찾았다. 간혹 불쾌한 점에 대해 비난하려는 유혹이 들었을 때, 웃는 얼굴을 보여주기로 결심하며 실천했다.

어느 날 휴식시간에 그 자매가 물었다. “데레사 수녀님, 내 어디가 마음에 드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자매님은 나를 볼 때마다 웃으니 말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사람 영혼 안에 숨어 계시는 예수님 때문이었다. “저는 자매님을 보는 것이 기쁘기 때문에 웃어요.”

상대방의 약점이나 문제점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면서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예수님만 자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유익을 먼저 구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저분은 왜 저러지? 이해를 할 수 없네.”라고 판단하며 정죄한다면 교만과 아집의 잡초만 점점 무성하게 자라날 것이다. 이웃들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결점은 곧 나의 거울이기도 하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이웃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듯, 나 또한 이웃들의 짐을 질수 있어야 한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2). 타인의 단점과 결점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기꺼이 짊어졌던 소화 데레사처럼 이웃들을 섬기고 싶다. 내 이웃의 결점과 아픔과 연약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 안의 잡초도 다 뽑지 못할 것을 알겠기에 더더욱 열심히 사랑해야겠다. 수많은 잡초들을 하나하나 뽑아 가면서 십자가 사랑을 소망해 본다. 잡초를 뽑아가노라면 십자가의 피로 물든 온전하고 붉은 사랑의 꽃이 내 안에서 활짝 피어나겠지.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