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바보라오

bfb5bcbac8c6b7c320.jpg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차돌맹이처럼 매끈매끈하고 영리하고 약삭빠르고 똑똑하게 살아왔다. 어느 덧 땅에 행복을 하나둘 가져보지만, 하늘에 행복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헛똑똑이 인생이다. 유리걸식하며 살 때보다 풍요롭고 평안하지만 그때만치 행복하지 않다. 사데 교회 사자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이다. 스스로 성공한 목회자라고 자긍하며 거만하고 잘난체하는 라오디게아 목회자처럼 되어버렸다. 눈멀고 벌거벗은 것도 모르고 세상의 지식과 말만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란 세상을 거슬려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의 이치에 빠르고, 세상의 순리를 따라서는 결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가 없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바보처럼 보여도 하늘의 가치관을 두고 살아가야 한다. 손해보고도 좋아하는 사람, 남은 잘 되고 나는 잘못돼도 좋아하는 사람, 세상 사람들은 비웃고 놀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바보가 되기를 자처한 사람들. 하늘나라를 위한 거룩한 바보가 되어야 한다.

갈 곳이 없어 갈멜산 기도원 뒷산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밤새 울었던 순간들이 그래도 행복했다. 처음으로 맛본 생명수와 같은, 강한 빛의 말씀이 내 안에 쏟아져 내리자 땅의 것이 아닌 하늘에 행복을 알게 해주었다. 이 땅에서는 바보처럼 살아갔지만 하늘을 품고 살아갔던 거룩한 분들의 삶이 나를 강하게 이끌었다. 땅에 행복은 그림자와 같고 풀에 꽃과 같은 것을 깨닫자 부질없는 이 땅에 행복을 과감히 포기하고 청첩장을 찢어버렸다. 하늘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기로 다짐하였다. 사람들에게는 바보, 병신, 천치 취급을 당하였지만, 주님 한 분만을 갈망하며 거룩한 바보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바보처럼 집도 없이 산으로 들로 다니며 머리 둘 곳 없이 살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눈보라 치는 산자락에 칼바람 맞으며 눈물 흘려 기도할 때가 정말 그립다. 바람막이 하나 없고, 두꺼운 패딩 잠바 하나 없어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곁에 눈물이 흩날리면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 와 닿았다. 온 천지를 다 준다 해도 오직 주님과 함께 하는 그 행복을 어찌 바꿀 수 있으랴. 찬 바위에 엎드려 기도하다 일어나보면 등에 솜이불마냥 하얀 눈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세상은 간 곳 없고, 이대로 살다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지금은 전기필름이 깔린 따뜻한 수실과 이불속으로 몸을 들이밀지만, 어느새 하늘의 행복은 사라졌다.

남들은 현실에 맞추어 먹고 마시고 즐기며 행복해 할 때 노아는 미련한 바보마냥 산위에서 매일매일 무려 100년이 넘게 배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하여 비웃었다.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배만 날마다 지을 수 있지?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데 무슨 홍수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저런 미련한 바보영감탱이 같으니라.” 아무도 노아의 행동과 말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의 말대로 홍수로 심판하셨고, 바보처럼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랐던 노아와 그의 가족을 살리셨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 때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았다.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우직하게 바보처럼 고향을 떠났다. 조카 롯이 기름지고 아름다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선택할 때도 자신은 나쁜 땅도 좋다면서 바보같이 양보를 하였다. 이삭은 수고하고 애써서 다 파 놓은 우물을 몇 번씩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아가도 말 한마디 반박도 하지 않고 바보처럼 고스란히 내어주었다.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 들린 여자를 고쳐주었지만 도리어 사도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 고통을 당하였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도망 칠 수 있는 기회마저도 사용치 않았다. 다음 날 간수가 풀어줄 때 그제야 자신이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라고 말하였다. 처음부터 밝혔으면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지만, 바보처럼 십자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처럼 사신 분은 우리 구주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바보처럼 그 좋은 하늘나라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베들레헴 말구유에 가난하게 태어 나셨다. 추운 겨울에도 머리 둘 곳도 없고 집 한 칸 없이 사셨다. 겉옷과 속옷을 다 빼앗아 가고 침을 뱉고, 뺨을 때린 원수들에게 도리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축복하며 십자가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가장 비참하게 돌아가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보스러움이 가득하다.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원수가 벗었거든 입히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벗어 주고, 매를 맞으면 기뻐하고, 일 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한없이 용서해 주고, 상전보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하셨다. 진정 복음을 따라 살아가면 세상 사람들 눈에는 바보처럼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오른 뺨을 맞고 왼뺨을 돌려 데냐고, 용서도 정도가 있지 한없이 용서해주라고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세상에 그 누가 따귀를 맞으면 가만히 있겠는가? 더 크게 되갚아주든지 반드시 보복을 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종처럼 섬기며 사셨다. 그러다 보니 당시 이치와 계산에 밝은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과 비웃음과 멸시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세상 수십억의 인구가 바보스러운 가르침이 가득하지만 성경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닮은 바보가 될 때 이 땅에 진정한 하늘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전남 화순 동광리에서 큰 부자였던 이세종 선생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보가 되어 버렸다. 동네 사람들의 빚을 다 탕감해주고 자신의 재산을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거지를 보면 불쌍해서 자기 옷을 거지 옷과 바꾸어 입기도 하였다. 한 번은 바꾸어 입은 옷이 매우 작아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사람들이 비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가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성인들이 되었고, 하늘에서 가장 큰 상급을 받는 기둥 같은 성도들이 되었다.

바보 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야.”라고 하던 장기려 박사의 말처럼, 진정 바보소리 들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남들이 싫어하고 가지 않는 좁은 길, 맨 정신으로는 갈 수 없는 길, 손해와 희생을 치루는 길, 매를 맞으면서도 고통을 당하면서도 주님의 사랑 때문에 걷는 길, 주고도 더 못 주어서 간이라도 빼주려는 바보의 길을 가보자.

세상과 육신을 대하여는 죽은 자 같이, 바보와 같이, 멍텅구리 같이 되고, 주님과 진리를 위하여만 나의 영이 새로이 살아서 새 생각, 새 정신, 새 관념, 새 풍속, 새 습관, 새 말씨, 새 행동이 나타나야 합니다. 곧 주님을 향하여 영으로만 산 자가 되어 하늘을 바라보고 진리로만 살지니 남이야 욕을 하든지 흉을 보든지 가난함이 오든지 병듦이 오든지 교회가 날 버리든지 목사가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든지 땅 위에서 어떠한 일이 있든지 다만 주만 보고 나갈지니라.”라던 이용도 목사님의 말처럼 세상과 육신에 대하여는 바보와 같이 되자.

올해는 저런 바보천지 같으니, 저런 덜 떨어진 병신 같으니.”라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우리 함께 바보들의 행진에 참여해 보자 좁은 길을 끝까지 따르기 위해 순수하게, 바보스럽게, 단순하게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나라의 행복한 바보가 되자.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