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아버지의 환갑을 겸한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선교기념관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협소하고 자료들도 미비해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제주도의 사역이 풍성하셨고, 제주도 여러 교회를 설립하시기도 하셨고,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 반대로 순교까지 하신 목사님이셨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곳까지 찾은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아내이신 윤함애 사모님의 유언이 적혀진 액자를 보았습니다.

사모님의 유언은 “세상과 짝하지 마라. 5분 이상 예수님을 잊지 마라. 열심히 교회봉사를 하라. 주의 종은 하나님 다음 가는 분이시다. 주의 종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마라. 목사님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 미리암과 같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네 인격을 어떠한 방법으로 무자비하게 짓밟고 천대와 멸시를 하더라도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끝까지 참아라. 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 심판대에서 예수님께서 판가름을 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참으며 네가 네 자신을 죽여라. 네가 죽어지지 않을 때 남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남을 용서하지 못할 때 예수님도 너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를 제일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다. 신자의 무기는 감사와 인내와 사랑과 겸손이다. 감사는 축복을 열고 닫는 자물쇠이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겸손할 수가 없다. 겸손하지 못할 때 성령님은 너를 외면하실 것이다. 제일 무서운 것은 신앙의 교만이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모님의 유언의 내용을 보고 뜨끔했습니다. 정신 차리라고 경고 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주님과 짝하며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야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인정받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주님께로 돌아오라는 손짓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잘난 것 없으면서 세상에 기웃거리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며 한심하고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잊고 사는 시간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주의 종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말씀도 찔렸습니다. 목사님이신 어머니를 주의 종으로 대하기보다는 그저 육신의 부모로 보일 때가 더 많고, 순종하기 보다는 내 고집을 앞세울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목사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지 보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악습처럼 자리 잡히진 않았는지 다시금 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자비와 천대와 멸시로 대할 때 쉽게 넘어지고 맙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여력이 없습니다. 그만큼 죽어지지 못하고, 영적인 힘도 없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늘 생각한다면 주님이 당하신 멸시와 천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만큼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겠지요.

나를 제일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라 하셨는데 용서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마음속으로 용서한다고 다짐하지만 상대가 나타나면 다시금 미움이 싹트니 그 생명력은 뽑아도 없어지지 않는 잡초 같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겸손할 수가 없다, 겸손하지 못할 때 성령님은 너를 외면하실 것이다, 제일 무서운 것은 신앙의 교만이라 하셨습니다. 늘 성령 충만하면 좋겠지만 충만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충만함을 받고 돌아서서 쏟아버릴 때도 허다하니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겸손은 극히 적을 것입니다. 주님은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는 말씀을 다시금 기억케 하셨습니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교만으로 내 안에 성령님이 나를 외면하는 일이 없도록 삶 가운데 늘 돌아보고, 철저히 회개하며 끊을 것을 끊고,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쳐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드려야겠습니다.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