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기쁨에게

나라에 큰 슬픔이 있었고

나에게 눈물이 있었다

나라에 큰 침묵이 있었고

너에게 통곡이 있었다

꽃은 피고 해는 지고

꽃샘바람 부는 침묵의 창가에서

사람들은 거미줄에 매달려 살기 시작하였다

날마다 십자가에는

낯모르는 사내들이 매달렸다 내려왔다

봄 편지정호승

 

노래할 이유

인도의 선교사로 잘 알려진 스탠리 존스(E. Stanley Jones, 18841972)69세에 중풍에 걸려 쓰러졌다. 미국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데 의사들이 나이가 고령이고 또 뇌혈관이 터졌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선교사님은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말씀의 능력을 믿었기에 방에 들어오는 간호사나 의사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자신을 향해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라고 외쳐줄 것을 부탁했다.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는데, 의사들이 포기했던 그가 일어나게 되었고 다시 인도로 돌아가서 20년 더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그리고 9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우주는 질서가 있고, 믿을만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질서가 있고, 믿을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시적인 기분이나 변덕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칙과 질서에 의하여 일하십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님은 믿음과 말씀의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는 자가 선포할 때 효력이 발생하는 것도 알았다. 예수님의 이름, 보혈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었다. 그 능력이 믿고 외치는 자의 것이라는 것, 말할수록 하나님은 더 실재적이 되고, 말하지 않을수록 하나님은 덜 실재적이 된다는 것을 일생을 통해 증명해 갔다.

19726, 스탠리 선교사는 인도의 삿할에서 마지막 일기를 쓴다.

나는 아무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승리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물론 나는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여전히 기뻐하면서 내게 주어진 길을 갈 것이다. 인도 최고의 안과 전문의들은 내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걱정이 없다. 나는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은 삶의 어떠한 순간에도 해답이 되시는 하나님의 예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결과만을 기다린다. 내가 기적적으로 시력을 되찾는 것과 시력을 잃은 채로 여전히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 내가 둘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다.

환경이나 건강, 작은 감정의 기복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하나님을 귀찮게 괴롭히는 보통의 많은 이들이 있다. 나도 그 한 사람이다. 노래할 이유가 있어야 노래를 하지 이유 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늘 행복해 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스탠리 선교사님은 고백한다. “그대는 노래할 이유가 있을 때에만 노래할 수 있다. 나는 주님을 노래할 이유로 삼는다. 나의 주제가는 예수 그리스도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부르는 노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용기를 북돋우려고 부르는 휘파람이 아니다. 나의 노래는 나의 전부를 다해, 마음을 다하고, 감정을 다하고, 뜻을 다해 부르는 노래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 없어서 노래를 부른다. 만일 내가 침묵한다면 돌들-무뚝뚝한 삶의 현실들-이 소리쳤을 것이다.

부르고 또 부르다 못해 천 번을 목 놓아 불러도 부족한 분이 예수님이시건만,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굴러다니는 돌들이 그분의 높으심을 찬양하게 하는 순간이 우리에겐 적지 않다. 이유를 갖다 붙여야 하는 분이 아닌, 그 존재 자체로 믿음의 주요 온전하신 사랑의 대상이신 그분에게 이유를 붙이는 우리는, 참 어리석고 연약하다.

하나님과 은총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000여명의 넘어섰다. 현지 언론이 보도한 네팔 내무부의 집계자료에 따르면 사망자는 2352, 부상자는 5000명 이상이다. 인접 국가인 인도(53), 중국(17), 방글라데시(3)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유엔은 전날 발생한 규모 7.8의 지진으로 낡은 건물들이 무너지고 전기와 수도가 끊기면서 네팔에서만 660만 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네팔 당국은 열악한 현지 사정으로 곡괭이와 맨손으로 잔해를 치워가며 이틀째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상자와 실종자가 건물 잔해에 깔려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규모 6.7의 강력한 여진이 카트만두 동북쪽에서 발생하는 등 이틀째 크고 작은 여진이 수십 차례 이어져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이럴 때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다. 내가 속한 나라와 동네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 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과 함께 긴장감이 생긴다.

하나님은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통해 끊임없이 인류에게 말을 거셨다. 그때마다 인간들은 이유를 모르겠다며 거부하거나 못 들은 척 했다. 주인이 말을 거는데, 피조물들이 나름의 핑계를 대며 거부하고 잘난 척을 했다. 그때마다 주인은 참고 또 참으며 오래 기다려 주셨다. 그분은 인간에 대한 사랑만큼은 인간이 너무 받아서 교만해질 정도로 지극하셨다. 이번에는 또 왜 말을 거신 것일까.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것일까 고민해 볼 일이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토록 타락하여 온갖 불의가 행해지고, 오히려 의인이 악인에게 핍박받고 불의한 자가 공의한 자보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현실에 대해 항의하며 따져 묻는다. 선지자가 생각하는 공의의 하나님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자신이 결코 악을 묵과하는 자가 아니라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며 선지자의 항의 이전에 이미 패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심판의 도구로 갈대아를 준비해 두셨다고 밝힘으로써 자신의 공의를 나타내신다. 그러나 선지자는 계속해서 항의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죄악을 심판하시지만 어떻게 더 큰 죄로 물들어 있는 이방 족속인 갈대아를 사용하시는지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까지니이까?”,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그러나 그는 문제의 대답을 잘 알고 있었다.

슬픔이 기쁨에게

나라에 큰 슬픔이 있었고, 나에게 눈물과 너의 통곡도 가끔 혹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꽃 피고 해 지고 꽃샘바람 부는 침묵의 창가에서 사람들이 거미줄에 매달려 살기 시작한 것도 오래전의 일이다. 우리는 이제 슬픔도 기쁨도 다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인정하며 언제나 평온해야만 한다.

하박국서의 말미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여 오히려 기뻐하는 것을 본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찬양하고 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두려움이 변하여 확실한 기쁨이 된다.

하나님의 구원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시며 세상 끝까지 이를 것이다.

선지자 하박국은 B.C 600년대에 살았지만 그때와 오늘날과의 차이는 없는 것 같다. 하박국의 힘이 하나님과 그 은총이듯,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크고 작은 하박국의 노래를 부르며 슬퍼할 때마다 하나님은 또 기다리셔야 하고, 눈물을 닦아주신다. 이해 할 수 없는 일도, 있을 수 없는 일도 없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는.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신앙의 어리석은 인간이 있을 뿐이다. 따지며 항의할 이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슬퍼하는 나 혹은 너에게, 말해보라. 아이처럼 굴지 말고 좀 성숙해 지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 안에 거하여 믿고 기대하며 기다려 보렴. 그리고 견디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라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