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중이신 부모님께서 잠시 귀국하셨다.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에 갑작스레 선교의 사명을 받고 훌쩍 떠나신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고생이지만 두 분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가 가득했다. 특히 어머니가 언어나 사역 면에서 큰 활약을 펼치며 인생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얘기에 놀라웠다.

영어교사와 목회자 사모로서의 경력은 물론이고 처녀 때 배웠던 어설픈 기타실력, 반주하는 딸의 어깨 너머로 배운 피아노 실력까지도 거기서는 귀하게 쓰인단다. 한국에서 목회할 때 우리 집은 언제쯤이나 이 훈련이 끝나나요?” 묻곤 했는데, 수십 년 간 이모저모로 훈련시키셨던 것이 이때를 위함이었다는 간증에 도전이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결코 알 수 없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훈련과 준비의 삶을 살아야 함을, 날마다 받는 훈련 가운데서 훗날 하나님의 때에 열매 맺게 하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사렛의 예수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숨겨져 30년을 사셨던 예수님을 주목하고 평생 그 발자취를 따랐던 한 사람이 있다. 샤를 드 푸코.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사치와 방탕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학술 조사차 갔던 모로코 탐험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된다. 모로코에서 돌아온 뒤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에 열중하던 그는 성지순례를 권유받아 이스라엘로 떠난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거쳐 그의 발걸음은 나사렛에서 멈춘다. 거기서 숭고한 노동자의 겸허하고 숨겨진 삶을 발견한다. 3년의 공생애를 위해 30년을 나사렛에서 가난한 노동자로 사셨던 예수님의 겸손과 신비에 매료당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사는 삶. 옷이 두 벌 있으면 한 벌 필요한 사람에게 주며, 먹을 것이 있으면 굶주린 사람에게 주고, 내일을 위해서 아무것도 비축해두지 않는 그러한 공동체를 꿈꾸며 나사렛에 있는 한 가난한 수녀원의 하인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고독 가운데 기도와 노동의 삶에 전무하지만 때때로 유혹을 받는다. “만약 그 수도원에 있었더라면 지금쯤 내가 원장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냥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 그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생활은 우리 주님께도 30년이 필요했다. 어째서 내가 이 생활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랴?”

주변의 권유로 성직자가 된 푸코는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 가까이에 있는 자그마한 모래 언덕에 수도원을 만들고,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과 방문객들에게 기도하고 말씀을 전한다. 그곳에 그가 원하는 작은 공동체가 탄생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사역지를 옮기게 되고, 그곳에서도 동료 한 사람을 기대하지만, 병에 걸려 도착하기도 전에 되돌아가고 만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밤에는 기도로 하나님을 섬기고 낮에는 찾아오는 이웃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며 섬기는 삶에 최선을 다한다.

이교도 하나 개종시키지 못하고 공동체를 이룰 수 없는 빈약한 자신의 사역을 보며 좌절할 법도 하지만, 자신의 삶이 언젠가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님께서 저를 위로해주시며 너는 너의 때에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우리 모두의 때, 마지막 심판의 때이겠지요? 주님께서는 제가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 할지라도, 선의로 싸움을 견디어내면 마지막 날에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약속해주십니다.”

몇 년 뒤 그는 이교도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 일생 가난한 목수이셨던 나사렛의 예수님만을 흠모하며 살았던 그의 삶은 끊임없는 겸손과 훈련의 삶이었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그의 삶은 가난하고 겸손한 영성으로 자리매김하여 많은 믿음의 후배들이 그를 따라 가난의 길로, 겸손의 길로 오늘도 들어서고 있다.

주님의 모습을 닮고자 철저한 영적 생활을 하며 열심히 훈련받고자 했던 뜨거운 마음이 어느덧 식어지고 틀에 짜인 생활보다 자유로운 생활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던 차였다. 예수님의 능력 있는 3년의 공생애 삶 이전에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서 30년의 시간이 있었음을 왜 이제야 보는 걸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에게도 30년의 세월이 필요했는데, 나에겐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한 걸까? 아마 나같이 우둔하고 미련한 죄인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우리 주님은 나사렛에서 30년이나 가난한 목수의 삶을 사셨나 보다.

내가 지금 받는 훈련이 헛수고처럼 느껴지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제 때에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맺게 하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내 마음대로 훈련의 마침표를 찍지 않으리라.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