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도화지

목마른 봄 가뭄 끝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글라라의 정원으로 올라갔다. 작은 정자 속으로 들이치는 아직은 차가운 비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만, 오늘은 좀 젖는다 해도 그대로 있고 싶다. 가만히 앉아 솟아나는 새순들을 눈에 담고 뒷산의 연두색 분홍빛을 빗물에 섞어 마음속 도화지에 색칠해본다. 그러다 눈을 감고 오래도록 주님 주신 평화에 감사하며 기도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 불리며 동화와 삽화를 직접 쓰고 그리며 손수 모든 것을 심고 가꿨던 여인 타샤 튜더의 아름다운 정원은 아닐지라도 나는 이곳에 있는 시간이 좋다. 창조의 묵상과 기도가 있고,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라도 들려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이른 아침에 듣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낭송은 주님의 십자가 밑으로 나를 이끈다. 막달라 마리아, 어머니, 요한의 애절했던 아픔과 눈물을 떠올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베드로를 만나 사랑으로 치료하셨던 갈릴리 호숫가도 된다. 봄날의 파스텔톤 색깔은 용서와 사랑의 색감이다. 죄책감을 덮는 부드럽고 따듯한 색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저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마음속 도화지엔 뭐든지 못 그릴 것이 없지만, 여러 가지 덧칠이 되면 탁해지고 물에 불은 종이들이 굴러 나온다. 청정한 수채화가 필요하다. 맑은 물이 있어야 하지만 물감 속으로 연필선이 다 비추는 투명한 채색은 필수적이다. 이것저것 자꾸 이유를 붙이는 마음엔 맑은 그림이 그려질 수 없다. 덧칠할수록 더욱 더러워질 뿐이다.

순결하신 주님 앞에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는 맑은 연두색이 필요하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는 청순한 진달래 분홍빛이 칠해져야 한다.

잡념은 갑자기 떨어진 새똥처럼 마음속 도화지를 오염시킨다. 욕심은 덕지덕지 겹칠하는 우울한 색깔이다. 아집적 주장은 그게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도화지를 집요하게 문질러 뚫어지게 한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샘 근원이 막혀 썩어가는 옹달샘처럼 속상하다.

스승은 말씀하셨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실하게 분별되었다면 주장을 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속에서 아집이 밀고 나오는 것만은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고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한두 번 주장을 했는데도 듣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이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지옥 가는 죄가 아니라면, 자기의 뜻을 버리고 그분의 뜻을 따라주는 것이 더 좋지요.”

주님도 못 지나간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마리아인들 때문에 멀리 돌아가셨다.

이런 이들의 마음속 도화지엔 맑고 투명한 봄날의 수채화가 그려진다. 일보다 사랑이, 건물보다 진리가, 책의 글보다 그 속의 삶이 중심이 되는 마음속 도화지엔 봄의 잎사귀들이 만드는 부드럽고 투명한 수채화가 그려진다, 맑고 깨끗한 물에 섞은.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