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선교] 영원한 나라에서 남을 열매를 바라보며

선교사가 직면하는 문제 중 하나가 질병과 빈곤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영혼들의 현실적 문제들을 어떻게 돕느냐다. 선교 현장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복음과 함께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들의 현실적 필요다. 절대적 궁핍과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영혼들에게 믿고 기도하라고만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 나면 나 자신에게조차도 피상적인 말로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 전부터 프놈펜에 있는 우리 교회에 한 자매의 전도를 통하여 네 명의 자매들이 출석하게 되었다. 그들의 고향은 프놈펜에서 북쪽으로 100킬로 떨어진 캄뽕츠낭이다. 프놈펜에 가까이 있는 따크마으에 있는 교원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이 학교를 졸업하면 모두가 의무적으로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중학교 교사를 하게 된다. 캄보디아의 학교 교원들의 수요가 많이 부족하고 또한 교사의 월급이 박봉이다 보니, 시골로 가서 교사직을 수행할 지원자가 많지 않아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그렇게 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들은 공부는 잘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담이 되는 사립대학교는 가지 못하고, 대신 국비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는 교원대학교에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합격하여 다니고 있는 것이다. 비록 외모는 촌스럽지만 교사 후보생들이라 그런지 모두가 총명하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 그 중에 한 자매는 그 학교에 네 번이나 떨어졌다고 하는데 결국 합격해서 다니고 있다.

어느 날 대화중에 그들에게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한 학생이 돈이 없어서 제일 힘들다고 주저 없이 대답했다. 한 달에 고향에서 얼마나 돈이 오느냐고 물었더니 50불에서 80불이라고 하였다. 이는 국비장학생이라서 등록금은 들지 않지만 보통 최소 생활비다. 그 돈으로 한 달 동안 먹을 것과 필수품 등 통신 및 교통비를 해결해야 한다. 그들의 고통은 고향 시골집의 가난한 경제 사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입이 한정되어 있는 가난한 시골 농촌 집에서 그 액수의 돈을 갖다 쓴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슬픈 얼굴과 눈빛이 내 마음에 계속 그림자마냥 따라다닌다. 젊고 똑똑한 인재들이지만 단지 빈곤한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절대궁핍에 허덕이며 기가 죽어 있는 이들을 바라보면, 측은한 마음과 함께 어떻게 해서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한참동안 골몰하기도 한다.

선교는 교회의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사람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며 인재를 육성하여 교회의 기둥이 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선교사들은 당장 눈에 드러나는 것에 치중하여 교회건물을 짓기에 열중하기도 한다. 물론 교회건물도 필요하다. 그러나 교회건물을 지어놓고 선교사가 떠난 다음에는 제대로 일할 사역자가 없어서 결국에는 교회 건물만 덩그러니 방치된 그런 예배당을 본 적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키워서 그들 스스로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일할 수 있도록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설교나 말의 가르침만으로 되는 일이라면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에는 반드시 수많은 인내와 희생과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어느 목사님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성인들의 삶을 소개할 때 과연 얼마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하며 의구심을 표현했더니 그분은 세월 속에 삶의 빛이 필요하지 않을까요?”라는 간단한 답을 보내왔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복음을 가르칠 때 문자와 언어만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이 있는 줄 안다. 그것은 주님께서 몸소 본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그들 앞에서 먼저 본을 보일 때에 감동을 받고, 비로소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진리들이 있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말솜씨로만 가르치려고 한다. 천국에서 우리에게 남을 열매는 희생하여 몸으로 실천한 것 외에는 별로 없으리라. 주님께서는 나의 마음속에 감동 주시기를, 영원히 남는 것에 더 치중하라 말씀하셨다.

눈에 보이는 건물은 물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낡고 닳아져서 결국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영육 간에 잘 돌보고 도우며 내게 그 무엇이 있다면 이들의 영혼을 세우는 데 우선하여 모두 쓰기로 하였다. 그것은 결국 주님을 위해 쓰는 것이고 주님을 위해 쓰는 것은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나는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와 문화도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아왔지만 서로의 얼굴과 눈동자를 보면 통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진심어린 사랑과 겸손함으로 접근하면 이들도 똑같은 사람이기에, 처음에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도 곧 진실한 사랑이 확인되면 마음을 열고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겸손한 사랑은 만국에서 통하는 천국 언어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데서 선교의 맛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이 아직 변화되지 못하고 미숙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아직 삶으로 그들에게 본을 보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눈앞의 열매를 바라지 않고 비록 시간이 더딜지라도 영원한 나라에 남을 열매를 바라보고, 이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세우기 위하여 내 자녀에게 투자하고 희생하듯 돌보아야겠다.

박용환 선교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