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도 예배드리라

충격 받은 일이 있었다. “목사도 예배드리라는 글을 읽고서다. 주일마다 4-5차례 예배 홍수 속에 묻힌 목사인데도 사실은 예배드리지 않았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설교하는 연설가였고 예배 인도하는 사회자였다. 설교에 사로잡혀 다른 어떤 순서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목사의 가슴이 삭막해지고 성직자의 외식이 더해만 갔다. 드디어 죄인의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기로 결심했다. 송영에 맞추어 마음 졸여 기도했고 공중기도에 정신을 집중하여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타인의 기도에 은혜를 받았다. 가슴이 촉촉해졌고 영혼은 생기를 얻었다. 지존하신 하나님께 무릎 꿇는 자세를 오랜만에 회복했다.

장로석에 앉아(장로석을 없애라는 캠페인을 가졌다) 의식적이고 눈물 없는 예배의 반복으로 심령이 거칠어지는 장로의 세계, 안내로만 정신 쏟는 중에 예배 식모로 지내는 안내집사와 사모들 다 문제다. 일반 교인들은 설교 듣는 청중으로 바뀌어 설교자에 따라 출석률도 달라지는 설교 듣는 귀만 발달시킨 개신교의 청중들은 반성해야 한다. 주님 사랑에 감격하고 성령의 기름이 철철 흐르는 샘솟는 예배가 살아나야 한다.

성전에 들어서는 순간 예배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2:20).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 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5:1).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도 주님이 계시다는 약속을 믿는다면 예배 받으시려고 예수님께서 그 교회에 와 계심을 성경적으로 믿어야 한다. 왕이 참석한 장소에서 경솔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티벳 라마불교는 두 손, 얼굴, , 두 발 모두를 땅에 대고 완전히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아침마다 700번식 반복한다. 우상은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받는데 참으로 경배 받으실 창조자 우리 하나님은 못난 기독교인들 때문에 정성이 빠진 예배를 받으시는 곤욕을 치르신다. 헛된 예배를 되풀이하고 있는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 역겨우신 하나님은 성전 문을 닫아버릴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1:10)고 호통 치신 일이 있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무슬림 사원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발을 씻고 들어간다. 힌두교당에도 역시 신발을 벗고 간다. 불당도 마찬가지다. 세상 신발, 세상 생각, 주제넘은 자기 고집의 신발을 훌렁 벗어버리고 겸허히 예배에 참석하라! 죄인의 모습으로 주 앞에 나오라! 예배 혁명이 일어나야만 생활 혁명이 일어난다. 생기 넘치는 예배를 드리는 중동의 한 교회는 무서운 박해 속에서도 사도행전의 사건을 그대로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새로운 2000! 사탄이 맹공격하는 21세기! 무엇으로 대항할까? 초대교회의 예배를 드려라! 성령의 기름이 흐르고 생수가 치솟는 예배를 드려라! 불 내리는 기도를 드려라! 주님과의 따뜻한 만남을 예배 때마다 경험하자! 그 힘 가지고 사탄나라 허물고 하나님 왕국을 세우자! 찬란한 복음나라를 세계 곳곳에 세워 나가자!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