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순간 지극히 작은 것까지라도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결혼 한다는 얘기와 함께 메일이 왔다. 답을 쓰면서 2월 달에 잠시 휴가가 있다고 했더니 다른 친구들과 시간을 급히 잡아서 만나자는 답장을 해왔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함께 공부하고, 연습하며 끈끈한 우정을 나눴지만, 영성생활을 다짐하고부터는 만나지 않았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대화도 하고, 나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복음을 전하리라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나갔다.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얘기하던 중 친구의 핸드폰사진첩을 보려고 집어 들었다. 순간, 보면 안 될 사진이 있다며 핸드폰을 빼앗았다. 당황하던 찰나 옆에 친구가 나를 향해 역시 사람은 안 변해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였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친구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았고 핸드폰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면 가끔 보면 안 될 것들도 보게 되었다. 그 친구는 유독 그런 나의 습관을 싫어하고 지적했다. 한번은 친구가 나간 자리에서 핸드폰을 보았는데 그것을 굉장히 불쾌해 하여 다툰 적도 있었다. 나는 누가 내 핸드폰을 보아도 상관이 없었기에 그런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친구 사이에 거리감을 두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을 품었었다.

어느 날 책을 보던 중, 자기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을 넘겨다보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호기심은 관심과는 다른 탐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회개하며 고치려 노력했다. 그런데 세상을 뒤로하고  영성생활을 한다고 몇 년 만에 나타나서 또 같은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역시 사람은 안 변한다는 한마디가 휴가기간 내내 귓가에 울려 마음을 찔렀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괴로웠다.

어떤 분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영성생활을 잘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비결을 찾으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소한 생활 가운데서 나타나는 하나하나의 그 모든 행실들을 간섭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우리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뜻이 무엇인가? 우리가 말 한마디 하려고 했다가 하나님의 눈치를 보고, 또 행동 한번 하려고 했다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고, 우리 마음속에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한다는 것이죠. 순간순간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비춰지는 그 하나님의 빛에 의해서 분별 하면서 생활을 할 때 예수님 중심으로 철저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밝은 빛을 따라 사는 생활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 작은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이 늘 진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영성생활을 배운다며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지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작은 것, 작은 습관, 작은 행실 하나하나를 고치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기도시간에 빠지지 않으면 영성생활을 잘하고 있다 생각했다.

영성생활은 작은 생각 하나, 마음가짐, 몸짓, 표정, 말 한마디로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 작은 행실들을 닦고 모아 성덕(聖德)으로까지 이끄는 것이다.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을 분초마다 의식하며 지극히 작은 악습이라도 고치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다 고쳤다고 생각한 악습이라 할지라도 또 다시 점검해 봐야 한다. 긴장 없이 편안하게 살기 좋아하는 내 본성과는 정말 반대되는 생활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세상의 때를 많이 벗었다고 생각했기에, 신앙인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며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는데. 작은 악습하나 고치지 못하고 창피를 당한 내 모습을 보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이내 생활 곳곳에 퍼져있던 악습이 속속들이 떠올랐다. 핸드폰이 없다는 이유로 가끔 주변 분들의 것을 빌려 사용할 때 사진첩을 보고 메신저를 보기도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필요 없는 것에 시간과 눈을 빼앗기길 잘했다. 그간의 내 삶이 진보되지 못한 채 자만하던 순간들이었음을,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시어 깨닫게 해 주셨다.

작은 악습이라도 놓치지 않으시고 고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감사할 따름이다. 거룩한 습관으로 삶을 가득 채워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나날이 되길 소원해 본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