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희생의 보물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미소, 따뜻한 몸짓 하나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아름다운 처방전이다. 시름시름 앓다가 뒤늦게야 처방전을 손에 쥔 채, 몸도 마음도 얼어붙었던 한 주간이 지나갔다. 돌아보면 큰 볼일을 본 듯 후련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떨떠름하다. 한 번 가면 오지 않을 그 시간을 보내고 자신을 돌아보며 왠지 모를 반성의 시간이 된다.

거의 바쁜 일정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번 한주간은 혹독하리만큼 바빴다. 스케줄을 보면서 이 주간을 잘 살아서 승리하리라 다짐 또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흐른 뒤 내 모습은 피를 토하는 폐병환자처럼 기력이 없고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처절하게 패배했다.

새벽부터 전쟁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3일간 식사당번이라 일찍 준비를 해야 했다. 9시에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출근해야 되기 때문에 심장이 쪼그라들 듯 바쁘게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부랴부랴 신문사에 출근해서 일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지만, 꿀맛 같은 3시간의 저녁휴식시간도 날아갔다. 직장인은 집에 돌아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휴식시간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해야 하며 수도회 일정에 맞춘 프로그램에 참석해야 한다.

식사당번을 하며 출근을 할 때는 항상 버겁다. 엎친데 겹쳐서 저녁까지 스케줄이 빼곡하면 숨 쉬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번만큼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를 희생 제물로 드리기로 결단했기에 용기를 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집중해서 보시기에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살얼음판 걷듯 범죄 하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한다. 시간의 주인은 내가 아닌 주님이시니, 이웃이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 쓰여 져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버겁다 보니 짜증이라는 손님도 오고, 섭섭이 친구도 찾아왔다. 바쁠 때는 몸 상태라도 좋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몸마저 무겁고 아팠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이 차츰차츰 점령해 왔고, 그렇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땅이 꺼지는 것처럼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로 인해 여기 저기 지뢰를 심어놓은 것처럼 발을 잘못 디뎌 빵빵 터졌다. 메케한 죄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음이 괴롭고 아팠다. 왜 그 지뢰를 밟았을까? 왜 더 참지 못했을까? 왜 더 이해하지 못했을까? 맡겨진 숙제를 다 못한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달리는 말에게 당근을 주기보다는 채찍을 때리듯, 하나님은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서도 넉넉하게 대처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나를 이리 저리 돌리면서 훈련하고 계시다.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섭섭한 맘은 어쩔 수 없다.

하나님께는 눈치가 보여 그럴 수는 없고 애꿎은 주변사람들을 향해 섭섭이가 요동을 친다. 그 요동침은 그들을 향해 내가 쏜 화살 같았지만 결국 내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화살을 하나씩 하나씩 맞을 때마다 아프고 괴로웠다. 그 괴로움과 번민은 상처로 고스란히 남아 아물 듯 아물지 않는 자국을 남겼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드리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으셨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겸손하고 아름다운 희생제물이 되어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들을 의인들로 바꾸어 가셨다.

주님이 내게도 말씀하신다. “너를 그곳에 보낸 이유는 사랑을 받기보다는 먼저 사랑하라고, 섬김을 받기보다는 먼저 섬기라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사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이들을 사랑하라. 그러면 내 사랑과 눈물로 뿌린 그 희생이 결국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일주일의 시간을 삭제키로 눌러 지울 수만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간도 내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실패를 통해 더 온전한 사랑과 희생과 인내와 섬김이 무엇인지 삶으로 배우는 시간이었기에 말이다. 그러한 아픔을 통해 나의 마음의 지경을 넓히시고 영혼을 담금질 해 가실 것을 알기에 또한 감사했다.

내게 남아있는 사랑과 열정과 시간을 주님과 이웃을 위해 다 태워 드리고 희생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값진 것은 없으리라. 보물이다. 섬김과 희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