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         
   

지난 10월 중순경 아들 기드온이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한 주 더 지났으나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골반이 작아서 자연분만이 어렵겠다는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수술하여 낳았다. 하나님이 정한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여 송구한 마음도 있으나 현대 의학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방법이리라 여기며 위안을 삼았다. 한 달쯤 지난 요즘, 4.5kg 정도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뉴스에서 임신 6개월 만에 700g 미숙아로 태어나 병원비로 1년 동안 1억의 빚을 지게 된 가정의 사연을 보았다. 미자립 교회를 섬기는 우리 가정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대부분의 신생아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열 달을 채우고 나옴으로써 가장 건강하고 적절한 몸을 갖추게 됨이 감사하다. 미리 나와도 문제, 너무 늦게 나와도 문제.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가 가장 좋은 때다.

성경에 요셉과 다윗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요셉은 17세에 형들의 시기로 죽을 뻔했다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가정 총무를 거쳐 무기수 죄수 생활을 하고, 30세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보디발 가정의 총무 일을 본 것이 총리로서 애굽을 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 어려운 시련의 과정을 잘 인내하며 마침내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룬 것도 대단하지만, 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 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 막강한 권세를 가진 요셉이 불과 며칠 거리 되지 않는 가나안 땅으로 아버지 야곱과 동생 베냐민을 보러 찾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에게 복수 혹은 위협을 가하러 군사를 이끌고 가지도 않고 말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꾹 참았다. 하나님이 주신 꿈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서 형들을 굴복시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이 이루게 하실 터그는 꾹 참고 기다렸다. 복수하고픈 마음, 아버지와 친동생 베냐민을 보고 싶은 마음까지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참고 견뎌냈다. 어쩌면 어쩔 수 없이 견뎌야했던 고통스러운 13년의 시간보다,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으려는 8년의 시간이 더 길고 고통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다윗 또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사람이었다. 10대 어린 나이에 불쑥 사무엘이 찾아와 기름을 붓고서 장차 하나님께서 너를 왕으로 세우실 것이란 예언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우쭐할 수도 있었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설레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사울 왕이 수금 켜는 다윗을 불러 악신을 쫓아내고서 그를 사랑하여 병기 맡은 자 즉 가장 가까운 위치로 그를 불러들였다. 아직 나이가 어려 전쟁터에 나갈 수 없는지라 명목만 주어진 것이다.

얼마 안 있어 블레셋과 큰 싸움이 있었는데 형들 안부를 알아보러 전쟁터에 방문한 다윗이 골리앗이라고 하는 거인 적장을 물맷돌 하나로 죽이게 되었다. 이로써 다윗은 명실상부 용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군대장관의 직위까지 오르게 되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꾸민 흉계도 훌륭히 극복함으로써 그의 사위까지 되었다. 다윗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무엘의 기름부음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릴 참된 왕으로 부족하다 여기셨는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사울의 미움을 받아 기약 없는 도망자 신세로 떨어뜨리셨다.

다윗의 입장에서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정도가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무기한 도망자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불과 강원도 땅만한 이스라엘에서, 그것도 숲이나 우거졌으면 모를까 황무지가 대부분인 땅에서 이리저리 급하게 도망다니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나마 깊고 복잡한 동굴들이 그의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견디다 못해 블레셋 땅으로도 도망가고 모압 땅으로도 피신해보는데,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어 다시 이스라엘로 들어가라 하신다. 거기서 하나님이 내주신 시험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단 과정 가운데 두 차례나 하나님이 다윗을 테스트하시는 기회가 있었다.

사울 왕을 죽일 절호의 찬스! 마음만 먹으면 사울 왕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를 끝내고 왕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다윗은 주변 부하들이 들떠서 자신들이 처리하겠다고 하는데도 막았다. ?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찌 기름부음 받은 왕을 죽여서 하나님께 범죄하겠느냐.” 아쉬운 기회들을 포기하고 다음으로 미룬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았고 결국 사무엘의 예언대로 왕위에 오른다. 만약 다윗이 사울 왕을 임의로 죽였다면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추대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울 사후에 전체 이스라엘 왕으로 즉위하는 데 7년이나 걸린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이스라엘 모두가 존경하는 왕이 되도록 한 것이다.

요셉과 다윗, 그들은 사람의 방법과 사람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도 여러 사건과 상황 속에서 이러한 기회(실제는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위기)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한 달이 지나도록 말도 못하고 몸도 뒤집지 못하여 우는 것으로만 의사를 표현하는 아들을 보면서, 왜 짐승들은 난 지 얼마 안 되어 자기 몸을 가누고 어미젖을 빨고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데 사람은 이리도 더딜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과정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면 반드시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기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