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에 불을

주님 여전히 믿음이 부족했고

다급할 때만 당신을 불렀음을

여전히 게으르고 냉담했고

기분에 따라 행동했음을

여전히 저에겐 관대했고 이웃에겐 인색했음을

여전히 불평과 편견이 심했고

쉽게 남을 판단하고 미워했음을

여전히 참을성 없이 행동했고

절제 없이 살았음을 여전히 말만 앞세운

이상론자였고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였음을

용서하소서

이 사십 일만이라도

이 사십 일만이라도 저의 뜻에 눈을 감고

당신 뜻에 눈을 뜨게 하소서

- 이해인 사순절의 기도시 중 


c1a6b8f1_bef8c0bd53.png 사십일 만이라도

사순절이 시작된다. 사순절은 교회력 중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절기다. 부활절(45) 전날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 전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회개, 경건의 시간을 갖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등은 사순절 묵상집을 제작하고 전국교회 성도들에게 특별 새벽기도, 작정기도, 금식기도, 헌혈운동 등을 당부한다고 한다.

조기연 서울신대 교수는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은 긴 연단과 참회, 자기 훈련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날이라며 그런 면에서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고통당한 우리의 이웃을 보듬어주지 못했던 삶을 회개하는 시간을 갖자고 말했고,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는 사순절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고난 앞에 자신을 돌아보며 영광스런 부활을 맞기까지 경건 훈련에 힘쓰자고 조언했다. 각 교회는 불필요한 소비생활을 점검하고 나눔 운동, 사랑의 헌혈을 개최한다. 다음달 37일 특별새벽집회를 개최하는 서울 명성교회(김삼환 목사)는 주보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회개, 절제, 경건의 삶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국제사랑재단(대표회장 김영진 장로)은 사순절을 맞아 북한 결식 어린이 한 생명 살리기 캠페인을 진행한다.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될 시기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제정된 사순절은, 금식과 기도 등 엄격한 자기통제를 하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다.

평온하고 안전하며 취할 것 많고 누릴 것 많은 풍요로운 이때에, 금식과 기도 등 엄격한 자기통제를 하며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다. 성탄절이나 부활절처럼 평화와 사랑을 나누며 즐겁고 화려하게 축복의 시간을 나누기보다 무덤에 갇히신 주님에게 다가가 나도 거기 무덤에 묻히는 고요한 시간이다.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사랑이신 하나님을 차지하는 골방 같은 시기이며 누가 더 고난의 주님을 차지하느냐를 선하게 경쟁 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다. 프랜시스 성자가 사순절에 단식과 금식을 하고, 분도 요셉이라는 거지 성자는 주님 십자가의 고난을 몸소 체험하고자 빙초산을 직접 마시며 고난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들이 아득한 옛 이야기처럼 희미해지는 나태한 때, 사순절이 있어 참 감사하다.

분명 그렇다. 너무 태만하고 게으르며 편견과 아집과 독선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것들이 그럴듯한 명분과 이유들로 사람들 앞에는 포장되어져 있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그렇다. 주님이 방관하시면 큰일이 날 위험천만한 모습들이 넘쳐나고 있다.

적절한 환경과 조건들을 주시지 않는다면 아니 되는 영적 태만의 시기에 사순절은 주님이 주신 기회요 은총이다.

성경에서 사십이라는 숫자의 시간을 금식으로 보내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던 일들을 보면 거의 같다. 노아는 사십 일간 홍수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고대하였다. 모세는 호렙산에 올라가 사십 일을 단식하면서 여호와의 명을 기다렸다(9:9). 엘리야 역시 사십 일을 먹지 않고 같은 호렙산에서 여호와의 뜻을 구하였다(왕상19:8). 이스라엘 민족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14:33). 에스겔은 사십일 동안 유다의 죄를 지고 엎드렸고(4:6),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단식을 하셨다. 우연처럼 사십 일은, 절제를 통한 고난 참여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해주는 시간들이었다.

오늘 날 사십일을 기도하거나 금식하는 경우, 대부분은 성경의 인물들과 같은 맥락의 영적 목표를 갖는 경우를 보게 된다. 억지로 꿰어 맞춘다 해도 사순절의 사십일을 영적인 유익을 찾는 시간들로 삼는다면 이보다 더한 유익은 없을 것 같다.

다시 보는 사명

요즘 젊은 세대들을 일컫는 말 중에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가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시대를 말해주는 신종 언어들이 자주 생겨나지만 이 단어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고 심각하다. 3포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을 말하고, 5포는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을 포기하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더 나아가 7포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 인간관계, 희망을 포기하는 세대임을 말한다. 한마디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희망을 포기하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이 또 있을까.

최고의 물질과 문명의 발달은 최악의 빈곤과 질병, 악한 범죄를 일으키며 세대를 불행과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 갈수록 악해지는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매체들과 사람들, 인본주의와 자본주의의 팽배, 종교의 다원화, 청소년 범죄의 급증, 노인인구의 증가와 고독사, 환경파괴, 전쟁과 살인의 잔인함, 신종 질병의 범람 등등, 인류는 헤아릴 수 없는 문제의 늪에 빠져야만 하는 현실이다.

안일하게 나만 아니면 되고, 내가 속한 단체만 평안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라 공존의 책임감을 가지고 주님께 아뢰며 애통할 시기라고 여겨진다.

도처에 세워지는 교회와 새롭게 피어나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에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불을 지펴서 주님께 긍휼을 구하며 나아가야 할 때인 듯싶다.

이 사십 일만이라도 나의 뜻에 눈을 감고 주님 뜻에 눈을 뜨는 날들이길, 날마다 사순절의 사십일로 살 수 있기를.

정욕을 포기하고, 육신의 것을 포기하여 성령의 소욕이 불일 듯 일어난다면 이보다 즐거운 일이 있을까. 아무 희망이 없어 포기한다는 것을 세대(世代)에 붙여 사용한다면, 우리가, 교회가 그간 어떤 일을 해왔는지 반성할 일이고 앞으로 사명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빛이 있다. 그 빛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이 속한 단체(교회)와 즐겁게 나누고 누리는 동안 세상은 어둠속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을 밝히려면 내가 밝아져야 하기에 내 몸을 쳐야 하고, 절제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참 어렵고 고통스럽다. 그만큼 육신의 힘에 눌려 사는 우리의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달 어느 날을 나름의 이름을 붙여 기념일로 삼아 정욕적인 시간으로 즐기는 것을 보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기념하고 추억하기를 즐겨하는 동물이다. 그만큼 감성에 충실하고 싶은 본성이 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적인 추억이 있다. 처음 신앙을 받아들일 때 가졌던 열정과 순수한 사랑의 시기를 우리는 처음사랑(2:4)이라고 한다. 그 기억이 신앙생활 내내 그리움을 주고 기억하고 반성하게 하는 바탕이 된다. 신학생이던 시절, 사순절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고난참여를 위해 금식과 절제, 작은 고행을 해보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상한 것들만 찾는다. 육체가 상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희생과 섬김을 동반하지 않는 것들을 찾는다. 점점 깊은 영적 추억이 사라지고 있다. 희미해지고 빛바래서 되새김질할 것들이 없다. 이대로 살면 아니 될 즈음에 돌아온 사순절, 결단하며 다시 주님을 바라본다.

기도가 간절해진다. 매번 새롭기를 명하시며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치열하게 반응하는 날들이길. 회개의 은총이 성령으로 뜨겁게 임하기를. 세상의 것을 포기하여야 얻어지는 영적 기쁨을 세상에 외칠 수 있는 단단한 영적용기가 고난을 통해 얻어지길.

간절한 기도로 사순(四旬)을 밝혀가는 첫날, 주님의 긍휼 아래 새로운 무릎을 꿇는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