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라도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나오지 못한다

캄보디아에서는 9월 말에 퓨춤번이란 큰 명절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3일로 정해져 있지만 놀기 좋아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습성 때문에 거의 두 주를 쉰다. 명절 중에 사람들은 유명하다고 하는 절 일곱 군데를 찾아다니면서, 죽은 조상들의 영혼들이 와서 먹는다고 믿고 주먹밥을 새벽에 절 마당에 뿌리는 풍습이 있다.

명절 마지막 주간에 프놈펜 시는 공장과 가게 문을 모두 닫고 고향땅으로 빠져 나가 도시가 썰렁하다. 선교사들도 막상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어느 분들은 같은 인도차이나 반도인 태국이나 베트남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기도 한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선교사부부가 온 가족이 함께 베트남에 다녀오려고 하는데 같이 동행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탐방도 할 겸 그의 가족을 따라 가기로 하였다. 여기 인도차이나 반도 안에 있는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베트남은 국경을 통과하여 운행하는 노선버스가 있어서 다니기가 쉬운 편이다.

프놈펜에서 호치민까지 한 사람당 왕복요금이 단 20불이다. 그동안 우리는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디 제대로 다녀보지 않았다. 그래서 모처럼 큰 맘 먹고 다녀오기로 했다. 버스를 탔지만 거의 수명이 다 된 중고버스를 헐값에 수입해서 운행을 하는 버스들이라서 타면 기분이 별로 상쾌하지 않다.

명절이라 오토바이 한 대에 둘씩 셋씩 온가족이 타고 달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오토바이 귀성행렬이 무척 위태하게 보인다. 이런 모습은 여기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도로가 좋지 않은데다가 오토바이행렬 때문에 버스가 제대로 속력을 내지 못하여 예상보다 훨씬 더 늦게 저녁 8시가 넘어 베트남 국경에 도착하였다. 무려 5시간 이상 걸려서 도착한 것이다. 그래도 난생 처음 베트남의 호치민 시를 가 본다는 들뜬 마음에 그럭저럭 잘 참고 왔다.

국경을 통과해도 또 3시간을 더 달려야 목적지인 호치민 시에 도착할 수 있다고 동행하는 선교사님이 귀띔해 주신다. 밤늦게 국경에 도착하여 캄보디아의 검문소에서 수속을 마치고 별 탈 없이 통과하였다. 그리고 바로 붙어 있는 베트남검문소에서 여행가방 검색을 마치고 모두다 다시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할 즈음에 갑자기 베트남검문소 직원이 차에 올라와서 나와 사모의 이름을 호출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국경을 통과할 때는 여권을 모두 차장에게 맡기고 그가 대행해서 일괄 출입국 확인도장을 받는 서비스를 해준다. 우리 이름을 호출 하는 순간 우리는 잠시 긴장을 하게 되었다. 그 직원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여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사무실에 가서 해 주겠다는 말을 하며 배낭을 들고 차에서 내려 따라오라 하였다. 그의 말인즉 우리의 여권에는 우리가 베트남에 전에 입국을 했었는데 아직 출국이 안 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하고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물었더니 그의 말은 이 여권으로는 입국을 허락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약간의 돈을 주면 해결을 해주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제의를 했지만 냉정하게 똑같은 대답을 반복 한다.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해 무척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오후 내내 힘들게 달려와서 국경선에서 퇴짜를 맞고 이 오밤중에 프놈펜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너무 막막한 일이다. 국경은 완전 오지이고 이 늦은 시간에 돌아가는 차도 없고 난생 처음 밟아본 이국땅이라 이곳 사정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국경 근처에 카지노를 하는 호텔이 있다 하나 불결한 느낌이 들어 차마 들어갈 기분이 나지 않는다.

동행한 선교사님 부부도 이게 무슨 일이냐고 안타까워하시다 버스가 우리로 인하여 더 지체 할 수 없어서 출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나와 사모만 머나먼 타국의 국경에서 처량하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시계를 보니 9시가 훨씬 넘었다. ‘주님! 이게 도대체 무슨 섭리입니까?’ 국경 검문소를 빠져 나와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게 서 있는데 몇 명의 현지인들이 접근해 오더니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보니 택시 기사들이다. 조금 전 검문소직원은 이 시간에는 차가 없고 프놈펜으로 돌아가려면 여기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출발하라고 했는데, 마침 명절이라 그 늦은 시간에도 택시가 있었다.

택시 기사들이 서로 자기 차를 타라고 나의 배낭끈을 잡아끌어 당기는 것이다. 프놈펜에 갈 것을 결정하고 택시비를 흥정하고 난 다음 몸을 실었다. 그런데 이 오밤중에 차를 타고 가다가 혹시 택시 기사가 강도로 돌변 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되었다. 여기서 프놈펜까지는 적어도 3시간 이상을 달려가야 되고, 도로는 칠흑같이 어둡고 인적도 전혀 없는 시골 들판길이다. 캄보디아의 들판은 한국하고 상황이 많이 다르고 그야말로 황량한 사막과 같다. 과거 킬링필드 내전 이후에 총기류가 회수가 안 되어서 지금까지도 은밀히 소지한 총기로 범죄에 이용되는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모든 걸 다 주님께 맡기기로 하고 잠시 묵상기도를 드리고 차 안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에 비행기로 갔든지 아니면 이곳보다 더 외딴 다른 국경초소로 들어갔다면 지금보다 더 낭패를 당했을 것이 뻔하다. 주님의 도우심에 감사하였다. 여권의 문제는 작년 초에 같은 집에 거주했던 치과의사 피럼의 친척이 캄보디아의 남쪽 끝부분 평야지대인 크마에 끄라옴에 사는데, 그의 사촌 결혼식에 우리를 초대해서 함께 잠깐 국경을 넘어 다녀온 일이 있었다. 그때 베트남에 들어갈 때 확인 도장을 찍었는데 나올 때 모르고 출국 확인 도장을 찍지 않고 나온 것이었다. 경험도 없고 무지한 탓에 그런 우를 범한 것이다.

우리는 그 충격적 사건으로 인하여 여권에 도장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뇌리 속에 너희가 호리라도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올 수 없다.”는 산상수훈의 말씀이 번뜩 떠올랐다. 천국의 국경선에서는 결코 그런 불상사를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우리의 영적인 여권인 나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점검해 봐야겠다.

박용환 선교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