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양의 편지


성결수도회 늙은 양, 작은 형제가 되어 20년을 넘게 살아왔다. 어제도 먼 과거처럼 갈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만 가는 날들, 오늘 아침에 읽은 말씀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온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22:21).

오늘 이 악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할 때에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런데 행복해지지 않는다. “에이, 짜증나. 또 그 말하려고?” 성경 얘기만 하면 앞서서 이런 말들이 들릴지도 모른다. 짜증이 나도 잠깐 생각해보자. 성질이 나도 생각해보자. 행복해지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행복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나를 너무 피곤하게 조인다고 생각하거나 너무 부담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됐어요. 그래서 어쩌라고요?”라는 마음이 들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라는 마음도 들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짜 행복을 주시려고 우리 곁에서 행복의 선물을 들고 계신다. 늙은 양, 주책바가지 작은 형제가 하나님의 행복을 전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주님께서 전달해 주셨으면 좋겠다.

한 달 전쯤, 사경회와 신학교를 통해 은혜받은 자매 청년들이 수도회에 입회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새벽 두 시 반까지 겟세마네 기도회를 드리고 수실에 들어와 주님 앞에 엎드리는데 눈물이 났다. 그냥 이대로 주님 앞에만 있고 싶어졌다. 매서운 눈보라가 사납게 불어오다가 지금은 소리 없이 잠잠하다. 이따금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뿐이다. 세 자매님들이 수련복을 입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두 손 들고 결단하는 그 모습이 눈가에 아른거려 또 목이 메어 눈물이 났다.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검은 보자기에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려 엄숙하게 이 세상에서는 죽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자매들의 고백에 청중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오직 주님을 위해 청빈, 순결, 순종의 삶을 살겠다고 서원을 드리는 저들이 너무나도 고귀하게 느껴졌다.

누가 저들에게 고향도, 부모도, 친척도, 결혼도, 세상의 행복도 다 포기하고 수도자의 길을 걷게 한 것인가. 하나님의 은총이요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함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16)는 말씀을 좇아 선택한 길인 것이다. 수도자의 길은 끝없이 거룩을 갈망하며 거친 광야를 지나 소망의 문으로 나아감이다.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다.

거리의 성자로 불렸던 방애인 선생님(1909-1933). 황해도에서 장녀로 태어났으며 부모들이 모두 황주읍 교회에 다녔던 까닭에 어려서부터 교회에 출석했다. 좋은 여건 덕택에 일찍 신교육을 받으며 1926년 호수돈 여고를 졸업했다. 그리고 그해 4월에는 전주 기전여학교 교사로 부임해 사회생활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첫 교사생활은 세상을 모르는 때 묻지 않은 신여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어딘지 모르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제나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맛보려고 심히 갈급해 했지만, 결국 영적인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19293월에 전주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모교인 양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신앙생활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습관적으로 형성된 형식적인 신앙생활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종교적 체험을 갈구하게 된 것이다. 부흥회에 참석하고 성경을 가까이 하며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주님의 은혜를 사모했다. 마침내 눈과 같이 깨끗하라.”는 주님의 생생한 음성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고, 그날이 참 나의 기쁜 거룩한 생일이라고 고백했다.

이후 삶은 완전히 변화됐다. 향수니 크림이니 하는 화장품은 자취도 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값진 주단이니 세루니 하는 옷감조차 그에게선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늘이 주신 얼굴 그대로의 사람이요, 검박한 단벌옷의 사람이었다. 최고급 의상에 화장으로 꾸몄던 신여성의 모습이 사라지고, 대신 순수하고 검소한 여인의 모습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신여성들을 매료시켰던 세상의 멋과 자랑은 더 이상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일순간의 세상의 화려함이 아니라 영원한 속사람의 아름다움을 보게 했던 것이다.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도가 삶이 되었다. 동료 교사들과 함께 전주 거리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전주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풍경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는 미소를 잃지 않고 다가서는 사랑의 교사가 되었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에게는 친구와 어머니가 되어주었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상처가 치유되고, 슬픔의 그림자가 떠나가며 새로운 생명력이 용솟음쳐 올랐다. 흉측한 모습의 나환자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둥병을 더럽다 하지 아니하고, 24세 처녀의 손으로 그들의 썩어가는 살결을 어루만지며 뜨거운 눈물로 기도했다. ‘주여! 이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의 능력과 사랑이 내 손을 통하여 이 괴로운 병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주님이시여, 자비와 긍휼을 아끼지 마시옵소서.’ 이 간절한 기도는 상처로 깊은 골이 생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그리스도의 씨로 심겨졌으며, 그들의 손등에 떨어지는 눈물은 그들의 썩어가는 살을 소생케 했다.

하지만 끊임없는 고통과 번민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육체적인 과로로 인해 몸져누울 때가 많아졌다. 게다가 부친이 첩을 얻어 나가고 신앙생활도 하지 않게 되자 정신적인 충격도 컸다. 이에 부친을 위해 아침 금식기도를 시작하여, 죽기까지 20개월 동안 변함없이 지속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건강의 악화로 찾아온 장티푸스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1933916일 전주에서 24세를 일기로 자신을 사랑하던 지인들의 곁을 떠나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갔다.

물론 그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는 20개월 동안 눈물로 기도했던 부친도 돌아와 딸의 여윈 손을 만지며 눈물짓고 있었다. 장례는 전주시민 전체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교회를 향한 불신의 악취를 풍기던 사회 속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예수님의 향기를 진하게 뿌려 놓았던 것이다.

눈보라치는 밤에 어린 고아를 업고 가는 방애인의 모습에서 길 잃은 어린 양을 되찾아 어깨에 지고 가는 선한 목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는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들이 그녀에게 거리의 성녀란 칭호를 붙여주었다.

사람의 불행은 내 욕망대로 자기를 사랑하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데서 온다. 거기에는 행복이 없다. 오직 행복은 내 이기심을 버리고, 나를 창조하시고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할 때, 행복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다.

죄악으로 칠흑같이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하나님께 바치는 봉헌의 삶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값지다. 우리의 삶이 전부 그렇게 바쳐져야 행복이란 선물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다. 새벽 다섯 시, 수도원에서 새벽 종소리가 울린다. 뎅그렁 뎅그렁. 죄 많은 이 세상을 깨우는 거룩한 종소리가 마을로, 세상 밖으로 맑게 퍼져나간다.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