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대한 손길, 첨삭

첨삭(添削)의 사전적 의미는 답안이나 글 따위의 내용 일부를 덧붙이거나 삭제하여 고침이다. 한자로 풀이하면 물 수와 더럽힐 첨이 합쳐진 첨()더할 첨으로 더하다, 맛을 더하다는 뜻이다. 닮은 초와 칼 도로 합쳐진 삭()깎을 삭으로 칼집, 빼앗다, 깎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글쓰기는 스포츠다.” 다카이 사이토의 말이다. 그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읽고, 쓰는 반복적인 훈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도전을 받아 최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여기저기 빨간 펜으로 달아놓은 글쓰기 사부의 코멘트에 충전이 되다가도 방전이 된다. 첨삭(添削)이라는 용어가 피부로 깊이 와 닿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육체와 영속에 마귀의 성질인 일곱 가지 죄성(26:25)이 뿌리박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렸다. 그 나라를 회복토록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첨삭을 하신다. 내 인생의 수치에서 더하기도 하시고 빼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내 영혼의 모난 부분과 거친 부분을 다듬기 위해 칼을 대신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은 더러운 욕망과 애정들을 걸러내고 빼내신다. 또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필요한 부분들을 첨가하신다. 철저한 회개생활, 말씀에 순종하는 단련된 의지, 조건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 등. 이는 첨삭을 통하여 글을 교정하듯, 세상의 유혹에 휩쓸려 갈팡질팡 갈 지() 자를 그리는 우리의 인생을 교정하시는 것이다.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의 욕망으로 더럽혀진 내 영혼에, 광야연단과정을 거치면서 성령의 맑은 물을 부으시고 깨끗이 씻기신다. 또한 돌덩어리 같은 자아덩어리에 칼을 대시고, 예수님의 보혈의 빨간 펜으로 잘못된 부분을 끊임없이 고치신다. 때론 글의 군더더기를 빼내듯 영적훈련이 느슨해져 비둔해진 영혼의 비곗살도 빼내신다.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을 때는 위로와 용기를 더하시기도 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물질이나 명예나 체면이나 가족이나 몸의 건강을 빼앗기면 하나님께 아우성을 친다. “난 싫어! 마실 물도 음식도 돈도 없는 이 광야가 싫어!” 이스라엘 백성처럼 투덜이가 된다.

10년째 뇌경색으로 쓰러진 사모를 간호하며, 세 자녀(당시 9, 4, 이틀 된 막내)의 아빠로, 개척교회 목회자로 꿋꿋이 살아가는 김병년 목사. 그는 깡촌 시골에서 3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한여름에 농활 온 대학생들의 풍금소리에 끌려 처음 교회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먹고 자고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다 대학 가서 인격적인 회심을 했고, 15년간 IVF 간사로 섬기다 푸른 꿈을 안고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평생을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살자던 사모가 셋째를 낳은 지 이틀 만에 뇌경색으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개척한지 4개월이었다. 그리고 선교 단체 수련회를 앞둔 어느 날 아내의 발 위에 올려 둔 찜질기의 화재로 아내는 다리를 잃어버렸다. 처음에는 목회도 가정도 감당할 힘이 없어 하나님께 원망 섞인 기도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 좀 그만 때리세요. 왜 자꾸 나를 때리세요. 하나님께서 내 옆에 계신다는 것은 알지만 왜 자꾸 저를 때리시는지 아프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병 고침을 위해 수년간 기도하던 그는 안 낫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음성을 듣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매일 새벽 3시 기상해 말씀준비를 하고,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돌아오면 쉴 새 없는 집안일이 시작된다. 아침식사 준비와 아내 기저귀 갈아주기, 자녀 등교시키기 등. 그의 별명은 엄빠이다.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모두 한다고 해서 자녀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우리의 아픔은 신비다. 하나님의 신비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부질없는 집착으로부터 안식을 얻는다. 신비를 받아들이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생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부모로서 가장 물려주고 싶은 것은 나의 삶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난을 이기는 삶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다. 고난을 대물림해주고 싶은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삶에는 고난이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다. ‘삶은 고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러기에 고난의 바다를 헤엄쳐 건너갈 능력을 물려주고 싶다. 진정한 믿음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고통 속에서 신실하게 걸어가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그의 삶은 참으로 빛이 난다. “아빠, 우린 가난한데 왜 이렇게 행복하지?” “막내야, 네가 가난을 아니?” “돈 없는 거잖아.” “그럼 행복은 뭔데?” “우리가 기뻐하는 거잖아.” 자녀들과의 일상적인 대화도 빛이 되어 우리의 삶을 밝히 비춘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 바람 때문에 중심이 이동했다.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우리에서 그분께로. 그래. 우리는 살아간다. 바람이 불어도.” 그의 말이 거룩한 바람이 되어 내 마음도 훈훈하다.

가족과 이웃들로 인하여 산업이 뜻하지 않게 빼앗길 때 히브리서 기자는 말했다.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10:34). 믿음의 거장, 욥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라고 했다.

대풍으로 인해 모든 소유를 빼앗길지라도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중심이 옮겨갈 수만 있다면 그 또한 큰 기쁨이다. 환난의 바람이 불어 닥쳐 모든 것을 빼앗길지라도, 정금같이 단련된 영혼에게 더해지는 놀라운 보화를 그 무엇으로 바꿀 수 있으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하였던 사도 바울의 고백이 상록수처럼 우리 앞에 있다. 하나님은 광야연단과정을 통하여 우리에게서 세상의 배설물을 빼내는 작업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신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하늘의 것으로 점점 첨가시키신다. 내 영혼에 짠 맛을 내고, 하나님의 온전한 닮은꼴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이시다.

첨삭의 달인, 여호와 하나님. 그분을 신뢰하여 삶을 온전히 의탁하는 노래가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내 인생에 첨삭을 가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