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


용량을 알아야 하는 시대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어느 분야에서든 용량을 모르면 살아가기가 힘들다. 어느 분은 취미생활로 등산을 택했다고 한다. 등산장비를 구입하려고 하는데, “배낭의 용량이 얼마고, 텐트의 수용인원이 얼마고하며 용량을 모르면 물건 사기도 어렵더라고 토로한다.

어떤 분은 취미로 금붕어를 키우려고 했다는데, 그것도 물의 용량, 약품의 용량을 모르면 안 되겠다고 한다. 주택을 지으려 해도 용량을 알아야 하고, 전기를 사용하려고 해도 용량을 알아야 하고,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해도 이런 저런 용량을 알아야만 한다. 컴퓨터, 스마트폰, 여러 가지 가전제품을 제대로 사용하려고 해도 용량을 모르면 안 된다. 환자가 약을 먹으려 해도 복용 용량을 알아야 하고, 모든 음료나 음식에도 다 용량이 있다. 그야말로 용량을 모르면 살수 없는 시대다.

용량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용기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의 분량이라는 뜻이다. 입체 도형의 경우 도형이 차지하는 크기, 즉 부피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현대에는 물질이 받아들이는 분량이나 받아들일 수 있는 분량의 최대값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되는 용어다. 그래서 전산의 경우에는,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라는 의미가 되고, 전기의 경우에는, “콘덴서의 마주보는 금속판의 넓이에 비례하는 양이 된다.

사람에게는 어떤 용량이 있을까? 사람이 음식을 먹는 용량은 위가 얼마나 큰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뇌의 용량은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는가, 또는 저장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육체적인 기능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용량도 있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한 되짜리 그릇에다가 한 말을 퍼 담게 되면 그 한 말의 곡식이 그대로 담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 됫박 외의 곡식들은 모두 땅바닥에 쏟아져서 쥐나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한 말짜리 그릇에 한 섬의 곡식을 퍼 담는다 해도 결국엔 한 말 이상은 그릇 속에 담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벼슬도 그릇의 크기대로 담아야 하느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용량 이상의 벼슬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벼슬뿐 아니라 모든 일에 그 사람의 용량 이상의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용량을 측정하는 단위들이 있듯, 마음의 용량도 측정할 수 있다면 무엇으로 측정해야 할까. 컴퓨터에 전체 용량이 있고 실제 사용 용량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도 전체 용량이 있고, 실제 사용하는 용량이 있을 것이다.

마음의 전체 용량이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마음의 용량과 아직 사용하고 있지 않은 마음의 용량 모두를 의미한다. 전체 용량은 곧 인간의 전체 마음을 말하며, 실제 용량의 마음은 곧 인간의 실제 삶에서 사용하고 있는 마음으로써, 이 마음이 곧 인간의 실제 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타락한 이후 사람의 용량은 많이 축소가 되었다. 첫 사람 아담은 그 많은 피조물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지 않았던가? 의학적으로 사람의 뇌는 그 전체 용량의 10퍼센트 미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타락 이후로 사람 마음의 용량도 많이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음도 그릇처럼 용량이 꽉 차버리면, 아예 새로운 양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아니면 새로이 받아들이는 양만큼 이미 담겨있던 양이 넘쳐나야 하는 것이다.

어느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평소 나와 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얼마 전부터 관계가 이전 같지 않게 소원해진 것을 느끼고, 아무리 생각해도 다툰 일이나 오해할 만한 일도 없었는데 왜 그럴까? 하고 유심히 지켜봤더니, 얼마 전 그 친구의 이웃에 이사 온 사람과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음을 알고서는, ‘,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의문을 풀었다.”

이미 용량이 꽉 차 있는 그 친구의 마음속에 새로운 친구를 받아들이다보니, 전에 있던 친구와는 소원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량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필요한 것만 놔두고 필요 없는 것을 버려간다면 더 많은 것을 저장할 수 있을 것이고,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에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자. 버리지 않으면 채우지 못한다.

어느 분이 메일을 계속 보냈는데, 계속 반송되어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용량이 꽉 차 메일이 안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해도, 어떤 응답을 하셔도 그것이 도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그분은 이메일만 점검하지 말고 마음의 용량을 점검하자고 하였다.

시편에,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시편 기자는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른다.”는 고백을 통해서 두 개의 깊은 바다를 연상하고 있다. 하나는 인생의 마음의 깊은 바다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깊은 바다. ‘하나님의 바다는 끊임없는 사랑으로 인생의 마음의 바다를 부르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부르시고, 환경을 통해 부르시고, 음성으로도 부르신다. 또한 마음의 바다도 끊임없이 자기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바다를 찾는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 두 바다는 서로 만족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헛된 용량으로 채워진 마음을 비워내고 하나님의 용량으로 채워진 영혼은 비로소 평안하다.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