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이유

 

청년수련회 장소인 소록도를 답사하게 되었다. 가는 도중 차안에서 기도회를 하고 난 뒤, 옆의 자매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한참을 생각하더니만 작은 소리로 성녀가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든 이들이 한목소리로 감탄을 하였다. 운전을 하는 형제에게 질문을 하자, “저야, 익은 열매가 되는 거죠.”라고 한다. 제각기 모두가 익은 열매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는데 나에게도 질문이 돌아왔다.

저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거죠. 그래서 천국의 순교자 마을에 들어가서 사는 게 꿈입니다. 순교자가 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순간순간 철저한 신앙생활과 참회생활과 엄격한 절제생활을 하면서 목숨을 내어 걸고 진리를 증거할 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순교할 수 있는데 어렵긴 하네요. 그러나 저도 여러분처럼 기왕이면 성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죄 많은 인생으로 살지만 아직도 죄의 법에 사로잡혀 사망의 몸에서 살고 있지만 성인들 발뒤꿈치라도 붙잡고 따라가고 싶네요.”

오늘날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인(聖人)들에 관한 얘기는, 케케묵은 소리나 이방의 소리같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님을 닮은 성화된 성도들이야말로 우리의 모범이요 인류의 보배이다. 물질만능주의, 쾌락지상주의 풍조 속에 세월호와 같은 참사와 총기난사사건 등 인간의 영혼이 고갈과 결핍을 느끼는 이러한 혼탁한 세상에 흘러드는 한 줄기 맑은 샘의 근원은 거룩한 삶을 살았던 그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분들로 인하여 교회는 정화되어 왔고,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인류의 참 지도자는 정치가나 철학자나 신학자가 아니라 숨어서 희생적인 삶을 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교회에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한 성화된 성도들이다. 그분들은 너희는 나와 같이 완전 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철저하게 밀씀을 따라 사신 분들이다. 이 땅에서 이미 심령천국이 이루어진 분들로서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 합일되시어 언제나 주님과 함께 생명의 능력 가운데 사신 분들이다. 세상을 끊어버리면서도 동시에 그 시대의 고통을 껴안으며 빛 된 삶으로 그 시대를 깨우셨던 분들이다. 나라와 민족 틈에서 눈물로 중보기도를 드리고, 각각의 시대를 옳은 길로 안내하는 동시에 성화로 이끄셨던 분들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세상과 거칠고 사나운 환경과 마귀와 싸워 이겨 신의 성품을 닮은 길로 부르고 계시다. 오늘 이 시대는 권력가, 정치가, 철학자, 형식적인 종교 지도자가 아닌 성경적 리더쉽을 가진 성인들이 필요하다.

소록도는, 성 프랜시스처럼 한센병 환자들을 끌어안고 거룩한 입맞춤을 한 분들이 계시다. 성 다미안처럼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동일한 병에 걸리어 그들을 일평생 섬기며 살겠다고 하는 분도 계시다. 손양원 목사님처럼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며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는 분들도 계시다. 과거 소록도는 피눈물을 흘리며 한 많은 인생의 굴곡을 거쳐 간 슬픔의 땅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섬이 되었다.

동성교회를 시무하시는 박영찬 장로님은 이곳을 낙원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부르는 찌라도찬양이 가슴을 뭉클케 한다. 그리 아니 할지라도, 내 뜻대로 안될 찌라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저주의 고통이 보석이 되어 지금은 천국의 섬이 된 이곳, 맑은 청록색 빛깔의 물처럼 진정 고통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영혼의 맑은 수원지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고 방황하는 청년들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고 눈물이 난다.

아씨시의 성 프랜시스는 청년 시절 흑기사가 되어 세상의 영웅이 되고 싶었지만,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의 헛됨을 깨닫고 부귀영화를 포기하였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거지처럼 탁발을 하며 살아갔지만 참 주인이신 주님의 기사로서 위대한 성인이 되셨다 성 어거스틴도 방탕과 쾌락의 삶을 과감히 끊어버리고 자신의 집을 수도원으로 개조하여 일평생 참회의 삶을 살다가 대성인이 되셨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성 안토니오는 완전한 자가 되려면 모든 소유를 버리라는 말씀에 큰 찔림을 받아 엄청난 유산을 모두 포기하고 사막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몸을 철저히 치며 거룩한 삶을 추구하다가 마침내 대성인이 되셨다.

나의 선생님도 성 리드비나의 책을 읽고 그토록 열망하고 소원하던 마지막 소유, 건강마저도 포기를 하셨다. “하나님이시여, 리드비나 성녀와 같이 저에게도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로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평생 병상에 누워서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지금보다 더 병세가 악화된다고 할지라도 항상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가운데 모든 고난을 이기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제 몸을 바칠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며 고난의 길을 선택하자, 주님은 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별과 같은 분으로 이끌어 주셨다.

나도 인생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난 뒤, 지금까지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성인들의 삶이 너무나 좋다. 아직 그분들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이곳저곳에 복음을 전하며 음식을 얻어먹는 탁발을 경험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힘이 난다. 마치 구름 위를 밟고 다니는 것 같다.

오직 예수님에게 미쳐 살았던 그분들의 삶이 설 미쳐있는 우리에게 계속 손짓하고 있다. 세상 것 다 끊어버리고 예수님으로만 만족하고 예수님만 주목하고 예수님께 온전히 미치라고. 그분들의 삶은 세상 것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어떤 청년 영성학교에 나오는 한 자매는 세상에 대한 미련이 조금도 없다고 하면서 빨리 성인이 되고 싶단다. 젊은 나이에 하늘의 빛을 본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분명한 이유를 발견 한 것이다. 더 이상 이 죄 많은 세상에서 방황하며 허망한 것을 붙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언제나 미래를 바라보며,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셨던 분들. 지각을 사용하여 빛과 어둠을 선명하게 분별하신 하늘나라의 영적인 천재들. 사랑하는 예수님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분들. 이 시대에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거룩한 발자취를 따랐던 성인들의 삶이 요구된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핏자국을 보며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그분들의 삶을 본받기를 힘써야 한다. 그분들의 전기를 부지런히 읽고, 그분들의 삶을 닮는 철저한 영성훈련의 도장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하신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우리 모두에게 들려지길 소망한다. 세상 다른 곳에 기웃거리지 말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도록 맑은 물이 흘러넘치는 진리의 샘터로 나아가자.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