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을 분명히 하라

가치관(價値觀)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인간이 자기를 포함한 세계나 어떤 대상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나 의의에 관한 견해나 입장 또는 어떤 물체, 행동, 현상 등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생각하는 관점 또는 어떤 가치나 뜻을 인정하는가에 관한 각자의 관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관점”, “옳은 것, 옳지 않은 것, 해야 할 것 또는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가 있다.

가치관은 인간이 사회 현상이나 문화, 예술, 정치 등 인간 생활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므로 사회관, 국가관, 세계관, 인간관, 역사관, 예술관, 교육관, 직업관 등에 영향을 주고, 각종 규칙, 규범, 도덕, 윤리, 법률 등과 함께 개인의 사회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가치관에 따라 직업이 달라지고, 배우자의 선택이 달라지고, 시간사용의 관념이 달라지고, 모든 삶이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기독교인들의 가치관은 무엇일까? 사도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바 있다. 우리 모두는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바울처럼 고백하여야 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긍정하는 기독교적인 인생관에서 가치관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자신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져 가지고 온 사람이 없다. 누가 자신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고 싶고, 그것을 스스로 결정하여 온 사람이 있는가? 자신이 선진국의 국민이 되어서 이 세상에 오겠다고 스스로 정한 사람은 없는 것이다. 자신의 부모를 자기가 택하여 온 사람도 없다. 누가 부모를 택할 수가 있겠는가? 아무도 자신의 얼굴을 미리 정하여서 온 사람도 없다. 자신의 성별을 자신이 정하여 가지고 온 사람도 없다. 모두가 하나님 편에서 정하여 준 것을 따를 뿐인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된 것도, 사실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선택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하여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이러한 선물로 믿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단과 고통 중에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하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천국의 그 놀라운 영광을 알고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택하심과 부르심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영광이며, 축복인가? 그 놀라운 영광에 동참시키시려 우리를 부르신 그 부름에 따라 우리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기독교적인 인생관에서 가치관을 시작하여야 하겠다.

또한 기독교적인 인생관은 인생이 나그네와 같고, 잠시 동안에 지나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을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나그네와 행인들이라고 부르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권면한다. 왜 두려운 나그네인가? 사는 동안 구원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지나가는 나그네요, 사는 동안 구원을 이루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들의 풀처럼 꽃처럼 잠시 피었다가 없어지는 인생이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만이 영원하다고 하신다. 속절없이 없어지는 인생인데 복음을 듣고 복음에 합당한 삶만이 영원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안개와 같이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안개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생인데, 오직 하나님의 뜻이면 이것저것을 하리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들이 모두 기독교적인 인생관을 알려주는 말씀들이다.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고, 안개와 같고, 꽃처럼 피었다가 지는 인생인데, 거기서부터 무엇이 가치있는 위대한 삶인가를 생각하는 가치관을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요, 하루살이에 눌려 죽을 인생들이 이 땅의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알아야만 한다.

이 땅에서 성덕을 이룬 성도들은 그 허무를 알고 살아간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특징은 언제나 미래를 바라보며 산 성도들이다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의 삶을 위해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땅은 잠시 지나가는 것이요, 영원이 아니기에 영원한 미래를 위하여 살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모든 물고기는 강을 따라 헤엄쳐 나간다. 그것이 에너지 소비도 없고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소수의 물고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대부분의 물고기가 강을 따라 계속 간다면 그곳은 바로 바다이다. 민물고기들이 살 수가 없는 소금바다인 것이다.

이처럼 많은 영혼들이 소금바다와 같은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강을 따라 가는 것처럼 세속적이고 마귀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세속적이고 마귀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고 이것을 거슬려 천국적이고 미래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강을 따라 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인다. 세속을 따라, 유행을 따라, 세상의 가치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게 보이고 당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속지 말라! 거기는 생명이 없는 넓은 길인 것이다. 생명이 있는 좁은 문, 좁은 길은 세속의 가치를 거슬려 올라가야만 만나는 것이다.

당신의 가치관은 어떠한가? 지금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가고 있는가, 주님의 가치관으로 살고 있는가? 잠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해 보자. 조용히 합장하여 참된 가치관의 지혜를 구하자.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