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네 어머니라

친정엄마가 돌아가신지 1주기를 앞두고 있고, 더욱 우울해질 큰 동생이 걱정이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큰 충격과 우울증, 불면증에 시달리며 힘들어하다가 교회를 나오면서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고 있던 차였다.

다행이도 이사를 앞두고 정신없이 짐을 싸고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느라고 동생은 슬픔에 빠질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토요일에 청소를 도우러 갔는데 집안 정리를 하느라고 분주했다.

동생은 강박적 성향과 점액질 기질로 인해 어릴 적부터 40세가 넘도록 살아온 동네를 떠나는 것을 무척 두려워하고 어려워했다. 그러나 언니와 함께 이사를 앞두고 기도를 하면서 엄마와의 기억이 많은 그 동네를 떠나기를 기도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다른 동으로 강권적으로 이사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또 하나님께서 좋은 이웃을 만나게 하셨다. 2층에 같이 세든 할머니가 인상도 매우 선하시고 푸근하시고 따뜻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었다. 청소하는데 오셔서 토마토를 썰어서 주시고 바나나도 주시며 화분에 상추도 양이 많아 당신은 다 먹지도 못 한다며 뜯어서 먹으라고 권하셨다.

또 그전에 살던 청년들은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서 당신이 손수 김치도 담아주시고, 키우던 토끼도 돌봐주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번씩 자녀들이 있는 서울을 가시면 20일내지 한 달 정도는 머물렀다 오시는데, 그 동안은 청년들이 화분에 물을 대신 줘서 당신이 편하게 다녀오실 수 있었는데,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며 기뻐하셨다. 그래서 동생들에게 잘 일러놓겠다고 안심을 시켜드렸다.

이웃집 할머니는 일보러 나가시고 또 청소를 하는데 이번에는 1층 주인댁 할머니가 올라오셨다. 주인댁 할머니는 허리가 많이 아프신지 허리를 잘 펴지 못하시고 이웃집 할머니와 나이는 비슷한데도 훨씬 노쇠해 보이셨다. 주인댁 할머니는 많이 외로우신지 물어도 보지 않았는데 본인의 형편과 처지를 상세하게 얘기를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향도 여기가 아니라 아는 사람도 없고 다리와 허리가 아파 마을로 놀러 다니지도 못한다고 하셨다. 교회라도 가보라고 했지만, 몸이 불편해서 다니기가 어려우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2층 할머니는 새벽기도도 다니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더라고 알려주셨다.

주인댁 할머니가 가시고 이웃집 할머니가 열무씨앗을 심으신다고 나오셨다. 그래서 대화중에 교회전도사라고 했더니 너무나 반가와 하면서 두 손을 와락 잡으신다. “새벽기도도 다니신다면서요, 기도 많이 하시나 봐요.” 했더니 자녀들이 잘 안 풀려서 걱정이 많이 되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심 연단의 진리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자녀는 절대 망하지 않는대요. 어머니가 기도하시니까 그 자녀들은 언젠가는 다 복 받을 거예요하고 위로해드렸다.

어머니가 장수하면서 이렇게 기도해주시니 부럽다고 말씀드리면서 생각나실 때 동생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자녀분들이 다들 멀리 사니 정작 생활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소소한 일들은 누구에게 부탁하기가 어려우시겠어요. 저희 큰 동생에게 맡기셔요. 웬만한 것은 다 고칠 수 있더라고요.”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저희 친어머니는 안계시니 어머니라 생각하고 모시라고 할게요.” 그렇게 말씀드리니 무척이나 흐뭇해하시는데 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동생 마음이 내 마음 같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큰 공약을 했담.’ 한번 내뱉은 말은 번복하기 어려운 법인데 참 난감했다. 동생에게 이 말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엄마가 계실 때에도 동생은 엄마의 빈번한 호출을 늘 못마땅해 하면서, 마지못해 엄마를 도와드리곤 했었다. 그런데 친어머니도 아닌 옆집 할머니가 혹시라도 자꾸 이것저것 도움을 청하는데 그렇게 달가운 마음으로 기꺼이 도와드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그로인해 너무 섣불리 말을 내뱉은 내 경솔함을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

주일설교를 준비하는데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하신 말씀을 읽게 되었다. “보라 네 어머니라.”하시면서 당신이 더 이상 돌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시는 본문을 읽는데 그 대목에 깊은 감동이 왔다. “보라 네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설교말씀을 전하였다. 교독문을 읽으면서부터 눈물이 쏟아져 예배 내내 눈물로 예배를 드렸다. 동생들도 눈물을 참느라고 얼굴을 들지 못하고 모두 숙연한 가운데 예배를 드렸다. 설교를 통해 엄마가 살아계실 때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고통을 호소하시는 엄마의 말을 뼈아프게 듣지 못했던 불효를 회개하면서 엄마 살아계실 때 못 다한 효도를 내 이웃에게 실천하자.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그런 이웃을 만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섭리다고 하면서 1층 주인댁 할머니도 2층 이웃집 할머니도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실천하자고 권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일오후 예배가 끝나고 이사를 도우러 동생 집에 가게 되었는데, 멀쩡한 세탁기 호스를 필요치 않아 버리려고 하니 이웃집 할머니가 아까워하면서 당신 집 세탁기 호스는 오래되어 더러운데 그 호스로 바꾸었으면 하셨다. 그러자 큰 동생이 기꺼이 돕고자 하는 것이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할머니께서 고마워하면서 마침 필요하던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내어주셔서 쓰레기를 담아 이사를 마치게 되었다.

대인공포도 있고 낯선 사람들과의 교제를 극도로 꺼리는 동생이 이웃집 할머니에 대해서 경계하는 마음도 없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진정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 내가 기도한대로 선하신 하나님은 모두 응답하신 것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라는 말씀과 같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육신의 부모님에게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지만, 눈을 돌려 가까운 이웃에게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 그 말씀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효도해야 할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슬픈 어버이주일이었지만, 우리 형제에게 섬길 수 있는 이웃 어머니를 주신 기쁜 반전이 있는 날이었다.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3:32-35).

주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