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라의 정원에서


나는 프랜시스가 아니다. 그러니 내게 글라라 같은 여 제자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글라라의 정원은 있다. 프랜시스 성자는 이따금씩 사람들로 인해 너무 지치고 병으로 인해 곤고할 때, 애제자 글라라 자매의 수도원을 찾아갔다. 그곳의 소박하게 가꿔진 정원을 거닐면서 주님의 위로 속에 지친 심신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글라라는 섬세하고도 지혜롭게 스승의 사정을 살피며 따뜻한 대화로, 조용한 침묵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스승께서 다시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학교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면 또는 주일 예배를 다 드리면 옥상의 정원으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묵묵히 자기 소임을 다하며 꽃을 피우는 식물들을 보며 천천히 산책을 한다. 무엇보다 좋은 시간은 이른 아침이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뒷산 너머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 일은 나를 날마다 새롭게 한다. 특히나 외롭고 곤고할 때면 그대로 글라라의 정원이 된다. 사람들에게 위로나 사랑을 느끼기보다는 책임이나 의무만 남을 때, 재산이 다 없어지고 이곳을 떠나면 장차 어디서 살아야 할지 막연해질 때, 정말 글라라의 정원이 되곤 한다.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거둘 수 있으신 주님 앞에 겸허히 서는 그곳은, 다 글라라의 정원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애착하는 것이 점점 사라지고, 내 이름으로 소유한 것들이 다 사라지는 곳에서 주님과의 산책은 황홀하다. 주님의 사랑만 필요한 까닭이다. 이것저것 여러 명분 속에 자기 이름의 소유가 커가는 곳에선 가난한 순박함이 깃들 수 없다. 소유를 지키기 위한 만물의 피곤함이 생기는 까닭이다.

미래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는 곳이 글라라의 정원이다. 누군가 내 것을 다 가져가도 좋은 곳이 글라라의 정원이다. 나의 실수나 미련함이 부끄러우나 그냥 그대로 주님께 아뢰며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곳이, 주님 십자가 사랑 앞에 나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 그대로 팔 벌려 서는 그곳이 바로 글라라의 정원이다. 참혹한 도덕적 실패에 언제나 송구함이 떠오르고, 어디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 가득할 때에 주께서 찾아오시는 그곳이 글라라의 정원이다.

오늘은 정원에 비가 내린다. 아무것도 불평하지 않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식물들의 순결한 모습을 본다. 빗방울이 순식간에 굵어지며 후드득 잎들을 뚫을 기세다. 몇몇 꽃잎들이 무참히 떨어진다. 그래도 여전히 아무 불평이 없다. 정자 안으로 들이치는 빗방울에 무릎이 젖는다. 천둥이 친다. 오늘은 그대로 다 젖어도 상관없다. 글라라의 정원 속에 내가 있다면.

아내가 염려됐는지 차를 갖고 올라왔다. “어서 오시오, 글라라.” 하자, 웬 쓸데없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어이없는 표정을 진다. 나도 왜 그랬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글라라 성녀에게도 프랜시스 성자에게도 죄송함이 가득하다. 그래도 그분들의 삶을 사모하는 마음이 가득하니 다시 글라라의 정원이 된다. 위로가 필요한 새 한 마리가 담장에 앉는다. 글라라의 정원에 비가 내린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