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가난 속으로 들어가자


12.jpg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성경말씀을 몸소 실천하며 진정한 가난의 현장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 김영낙 목사님(하늘길수도원). 복음삼덕 중 청빈의 삶을 되새기게 하는 삶속에 일생 가난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이 전해진다 


가난하게 살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원자력출신이다. 20대에 물질문명의 발달로 미국이 잘사는 복을 받았으니 틀림없이 행복할 것이라 예상하면서 그 비결을 배우기 위해 갔다. 그러나 1~2년 지나면서 그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부자가 되면 행복할 텐데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복음서에 나오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부자나라 미국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을 직접 목격했는데, 그렇다면 진짜 가난한 자가 복된 것인가? 고민하던 끝에 직접 가난 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20여 년 전부터 현대문명의 이기 중에 우리에게 때려야 땔 수 없는 전기가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인데, 의도적으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시작으로 강원도 홍천의 산골짜기를 찾아 들어가 손수 돌과 흙과 나무로 집을 지었다. 추운 겨울이 되어도 보일러가 없으니 아궁이에 나무를 때고, 무더운 여름이 되어도 냉장고나 선풍기, 에어컨이 없다. 화장실에 갈 때는 나뭇잎을 사용한다. 늦가을이나 겨울에는 낙엽을 사용하고 한겨울에는 겨우 한 칸 두 칸의 화장지와 물 한 바가지로 일을 치른다. 자연식 비데인 셈이다.

목사님이 청년시절 우연히 환경보호단체의 활동을 하게 되면서, 발달된 과학과 문명으로 인해 수명이 연장되고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으며, 이것이 결국에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갈수록 심해지는 황사현상이나 원자력 발전소 고장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 이상기온과 지구 온난화 현상이 가장 비근한 예이다. 가난하게 살다보니 자연친화적인 삶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더욱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더 실감나게 은혜가 느껴졌다 


풍요 속의 빈곤

근래 김 목사님이 심각하게 느끼며 기도하는 것은 기복신앙과 세속화에 찌들어 영적으로 잠이 든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분명히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교회에서는 가난이 저주요 불행으로 치부되고 있다. 가난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요 주변에 덕을 끼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그런 논리라면 예수님은 저주와 불행의 대표 아이콘이 되는 셈이다. 예수님께서는 말구유에 태어난 가난한 탄생이었고, 30세까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시다가, 십자가 위에서는 더없이 가난하여 발가벗겨진 채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런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으니, 이 가난은 무엇이고, 또 흔히들 생각하는 불편하고 힘들고 괴로운 고통의 가난은 또한 무엇이란 말인가?

50대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이 염려되어 보험을 몇 개씩 들고, 80~90년 넘게 수명이 연장되면서 노후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시대가 되었다. 집이 있어도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 돈이 많으면 사후에 자식들이 유산분쟁으로 근심, 매사에 노사초심 근심 걱정이 많은 것이 사람들의 실태다. 더구나 갈수록 자살인구가 늘어가고 있다. 생활고를 비관하여, 홧김에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환경에 좌절하여 자살을 한다. 201214160명이 목숨을 끊었고,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 10만명당 평균 33명으로 OECD2.5배의 자살률, 11년째 세계 자살 1위의 나라다. 예년에 비해 훨씬 더 잘 사는데도 자살률 1위라니. 


가난은 복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가난의 복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가난하게 사는 것을 선택하였으니, 다른 사람들이 부자로 사는 게 부럽지 않고 어떤 고난이 와도 두렵지 않다. 별 욕심이 없이 사니 마음이 평안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고, 가진 의복 별로 없어도 만족하고, 손수 무공해로 농사지어 먹고 사니 암 걱정 없이 살아간다.

가난하게 사는 목사님이 새삼 느끼는 것은 너무 풍요로운 물질과 편리한 환경 속에서 영성이 죽어가는 한국교회가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풍부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힘들어 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해 수도원을 개방하고, 현대의 문명이기의 노예가 되어 시들어가는 사람들의 회복을 위해 돕고 싶다고 한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영성은 물질의 풍요와 문명이기의 편리함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광야에서 나오는 것이 다.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던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세례 요한도 유대 광야에서 살았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3년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오직 기도로 준비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나는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시며 일생 청빈하게 사셨던 예수님이시다.

그런가 하면 성도들의 모형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광야에서 40년간 연단을 받아야만 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도 예외없이 연단을 받아야만 한다(13:8,9). 연단이란 범죄하기 쉬운 환경 즉 가난하고 불편한 환경 속에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적인 훈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문명의 이기가 발달된 환경 속에서 결코 영성훈련이 되질 않는다.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거친 광야가 아니면 영성이 약해져 급속히 세속화 되어버린다.

교회역사를 볼 때, 부유해지고 환경이 좋을 때마다 쇠퇴하고 끝내는 몰락하였다. 유럽교회와 미국교회가 그렇고 한국교회도 그 문턱에 들어선지 오래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새끼를 그 날개 아래 모음과 같이 너희를 모으려 한 것이 몇 번인고하시며 눈물로 탄식하셨던, 그 주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5:3)하고 하셨다.

몸소 가난을 실천하사는 김 목사님이 가난은 저주가 아니라 진짜 복이라고 하신 외침이 마음에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다. 죽기까지 청빈하게 사셨던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더 부유하지 못해 안달하는 우리의 삶을 회개하자 주님의 고귀한 가난 속으로 우리도 들어가 보자.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