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참된 행복을 누리며 큰 사랑을 실천한 성도들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크게 박해하던 때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성도들은 불에 타 죽기도 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도 하였으며, 맹수들에게 찢겨 죽기도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핍박을 당하고 냉대를 받는 등 비참한 생활을 했던 순교성도들은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대로마제국의 황제로서 온갖 부귀와 권세를 누렸던 네로는 항상 세상적인 욕망이 넘치는 가운데 불안과 증오를 품고 살다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에 나온 사람들 중에 누가 더 행복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양육해주셨던 노모가 귀찮아서 아파트에 홀로 버려두고 가버린 무정한 신사가 있습니다. 또한 유학을 가서 해야 할 공부는 하지 않고 도박을 하다가 돈을 잃고 부모님께 책망을 받게 되자, 재산을 상속받을 욕심으로 부모님을 칼로 40-50군데나 찔러서 죽인 흉포한 아들이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딤후3:1-3).

그러나 이 어둡고 패역한 세상 가운데서 조용히 하나님의 빛을 가장 밝게 증거하고 실천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40년 동안 병상에 누워 그 모진 고난 가운데 생활하시면서도 여러 가지 육체적인 악조건과 고통을 주님께서 허락하신 참 좋은 선물이라고 늘 감사드리며 복음을 증거 하시는 성도님이 계십니다.

전신마비로 얼굴과 팔다리가 일그러지고 떨리는 입술과 불편한 손으로 아름다운 시를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송명희라는 시인도 있습니다. 일생을 문둥병자들과 함께 살면서 사랑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파했던 다미안 성자 같은 분도 계십니다. 이러한 분들이 그와 같이 신비스럽고 기적적인 생활을 하며 온전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천국소망과 재림대망신앙의 중요성

베드로전서 3장 15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께서는 성도들이 언제나 천국에 관한 소망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영원한 복락과 행복이 넘치는 나라, 죄와 불행이 없는 나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나라에 대하여 소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고,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가운데 오직 주님께서 재림하시기만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천국과 영생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이 세상의 안락이나 고난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빛을 가장 밝게 증거하고 실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약해지고 재림대망신앙이 희미해질 때, 교회와 성도들은 세속의 더러운 물결에 휩쓸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현대교회의 기복주의, 물량주의, 세속주의, 학벌주의, 교권주의, 합리주의, 믿음만능주의 등은 모두 세속화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빨리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을 속히 천국으로 데려가 주시기만을 고대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재림대망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잠시 머물 이 세상에서의 쾌락과 안위, 혹은 고난과 질고에 매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나그네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에 예언된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정확하게 이루어져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지난 1992년 10월에 예수님께서 공중강림하시고 휴거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증거 했던 사람들은 모든 성도들과 교회들에게 올바른 재림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경각심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비록 1992년 10월 재림설이 불발탄이 되기는 하였지만, 이 세상의 심판과 그리스도 왕국시대가 가까웠음을 알려주는 종소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늘 깨어서 재림을 대망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매일매일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성화되는 길로 정진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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