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하는 교회의 씨앗

c1a6b8f1_bef8c0bd8.png고된 종살이를 겪은 지 기나긴 사백 년,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창성”(출1:12)하여 애굽 사람들의 근심덩이가 되었다. 드디어 남자아이가 출생하면 즉시 죽이라는 씨족 말살 정책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하나님 경외사상을 품은 조산원들은 살생의 악법을 따를 수 없어, 히브리 여인들은 건장해서 산파가 도착하기 전에 거뜬히 출산한다는 보고를 올렸다.

끈질긴 사탄의 하수인들은 사내아이는 출생 즉시 나일 강에 버려 고기밥이 되게 하라는 살벌한 어명을 내렸으나, 바로 이때 태어난 노예의 아들 모세가 대 애굽의 왕자가 되고 이스라엘을 탈출시킨 민족의 해방자가 될 신비를 그 누가 알았겠는가.

기독교의 영웅시대를 주후 3세기까지로 본다. 교회가 세속을 주름잡았던 중세기를 오히려 암흑시대라 말한다. 주후 삼백 년까지 믿음의 선배들은 순결의 보상을 핍박으로 받았다. 카타콤이라는 무덤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동굴 속에서 짐승처럼 살았다. 그럼에도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강했고 정직했으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성자들이 되었다. 그 힘 앞에 바위 같은 철성 로마도 무릎을 꿇었다. 지금의 안일한 기독교를 질책하는 교훈이다. 삶이 버거워 징징대는 지친 영혼들에게 가슴이 덜컹해지는 채찍교훈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고난 신학을 강조한다. 주님 당하신 고난을 친히 순례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11:24-25 표준).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11:27 표준). 그러나 악질적인 환난이 그의 길을 막지는 못했다. “우리는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궁지에 몰려도 빠져나갈 길이 있으며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습니다”(4:8-9 공동). 비참, 처참함을 집어삼킨 전천후(全天候) 전도자다.

천국 초청장을 연거푸 보내도 도리질하고, 미친 사람들과 널뛰기만 한다 하여 무법폭력 세상을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다산(多産) 계획을 발표하셨다.

“환성을 올려라.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한 여인들아 기뻐 목청껏 소리쳐라. 산고를 겪어 본 적이 없는 여자야 너 소박맞은 여인의 아들이 유부녀의 아들보다 더 많구나 야훼의 말씀이시다. 천막 칠 자리를 넓혀라. 천막 휘장을 한껏 펴라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리라. 네 후손을 뭇 민족을 거느리고 무너졌던 도시들을 재건하리라”(사54:1-3).

기독교는 분명 양면성을 가진다.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또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죽지 않으며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고후6:9-10). 박해 속에도 복음은 후퇴한 일이 없었고, 보이지 않는 칠천의 의인들은(롬11:4) 지구촌 곳곳에서 떼를 이루어 가고 있다.

용기를 뿜어내자. 학대 받을수록 번식하는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란 굳센 진리는 변함이 없다. 어두움은 새벽 앞에 무릎 꿇는 법칙 때문이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것은 천국의 본질 때문이다.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