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처럼

bbe7b8b6b8aebec6.jpg교회 설립예배를 드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루한 차림의 어떤 남자분이 교회 문을 두드리셨다. 갱생원이라는 곳에서 오셨다는 그분은 라면 값이라도 달라고 청하셔서 마침 설립예배 때 남은 기념 타올이 있어서 그것과 함께 얼마를 드렸다. 그런데 대뜸 그분이 교회는 뭐하는 곳이에요?” 하고 묻기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에요, 일요일 11시에 예배드리러 오세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그 주부터 꼬박꼬박 예배를 드리러 오기 시작하셨다.

예배 전에 일찍 오셨기에 커피를 타 드리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갱생원이 어떤 곳인지 묻다보니 그분의 어두웠던 과거를 알게 되고 고아 출신에 참으로 의지할 곳 없는 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기회를 타서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분은 내 말을 잘 경청하시고 또 바로 영접기도까지 따라서 하셨다. 어쩌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성껏 섬겨드리고, 그분이 혹시나 마음 상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교회에 남은 반찬과 과일 등을 싸드리고 여비까지 챙겨드렸더니 무척이나 고마워하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과 더 대화를 하다 보니 몸이 많이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해 봄에 한 백내장수술이 잘못되었는지 수술 뒤 극심한 두통이 떠나지 않고, 눈도 잘 안 보이고, 눈꺼풀에는 굵은 모래가 잔뜩 끼어있는 듯 고통이 심하다고 하시면서 연신 눈을 비벼대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안과에서 MRI를 찍으면 두통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뇌쪽 MRI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내신다고 했다.

안타까운 사정을 들으니 또 모른 척 할 수가 없어 남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돈을 빌려드리고 형편이 되면 조금씩 갚으라고 하자고 설득하여 일단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먼저 조카가 간호사로 있는 병원원장님이 뇌도 잘 보고 실력 있는 분이라고 해서 일단 그분의 진료를 받아보기로 하고 모시고 갔다.

그런데 그 원장님은 경과를 들어보시더니 눈 수술과 두통은 아무 상관이 없다 하시면서, 자세가 나빠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해서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목 디스크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분은 MRI를 찍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시는 것이었다. 그분은 마치 MRI를 찍으면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나고 고침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계신 듯 보였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왜 그분을 우리 교회에 보내셨나요?’ 고민하면서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베데스다의 38년된 병자라고 깨닫게 해주셨다.

그렇다면 베데스다 병자가 마치 연못물이 동할 때 처음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처럼 그분도 MRI만 찍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데, 예수님께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은 베데스다의 병자를 본문으로 설교를 하면서 비슷한 통증으로 고통 받다가 치료 받으셨던 지인의 실례를 들면서 예수님을 의지하면 기적으로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서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그분이 내 설교를 듣고는 내가 MRI를 찍어줄 마음이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그 뒤로 뜸하셨다. 한 주 두 주 빠지시더니 이제는 걸음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왜 안 오시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심 앓던 이가 빠진 듯 은근히 시원해 하는 내 마음을 발견했다. 사실 그분에게서 어떤 역겨운 냄새가 나는데, 그분이 다녀가시고 나면 성전 문을 열어 한동안 환기를 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눈을 수시로 비벼대고, 그 손으로 커피를 타 드시기도 하니 그분이 가고 나면 소독용 알코올로 전기 주전자를 닦아대고 문고리며 그분의 손이 탄 부분들을 소독하느라고 분주했다. 그런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난 어쩔 수 없는 위선자구나! 다른 사람들이 왔다 가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애양원을 방문해서 들었던 포사이드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19094, 광주의 선교사 오웬이 지방 전도를 나갔다가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맸다. 그래서 의사이기도 한 포사이드 선교사님께 도움을 청했고 그 일로 영산포에 오시게 되었다. 그런데 말을 타고 광주로 들어오던 도중 길가에 버려져 있는 여자 걸인을 보게 된다. 손과 발은 짓물렀고 퉁퉁 부어 있었다. 온통 상처투성이였고, 걸친 누더기 옷은 피고름으로 얼룩져 있었다. 한센병 환자였다.

닥터 포사이드는 위독한 동료 선교사의 병을 고치러 가는 바쁜 길이었지만 길가에 버려져 신음하고 있는 환자를 그냥 버려두고 지나칠 수는 없었기에 그 여인을 감싸 안아 자신의 말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광주까지 갔다. 이 사건으로 해서 포사이드 선교사는 선한 사마리아인’(10:34)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광주에 도착해 선교부 병원에 입원시켰지만 다른 환자들이 난리를 쳐서 벽돌 굽던 가마굴로 여인을 옮겼다. 몸에서 냄새가 나고 손과 발이 부르터 진물이 흐르는 여인을 만지는 이는 포사이드뿐이었다. 옮기다가 여인이 지팡이를 놓쳤다. 그걸 주우려는 여인을 두 손으로 안고 있던 포사이드는 옆에 서 있던 최흥종에게 소리쳤다.

미스터 최! 지팡이를 집어주시오, 어서!” 최흥종은 주저했다. 결국 포사이드의 재촉에도 그날 그는 고름이 묻은 지팡이를 잡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최흥종은 고민에 빠졌다.

서양 선교사는 인종이 다른 문둥병자를 자기 자식처럼 만지는데 왜 나는 지팡이도 잡지 못했는가? 용감하다는 나도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저 사람의 용기는 어디서 나왔는가?”

고민은 결심으로 바뀌었다. “그래, 저것이 예수교의 힘이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저 의사처럼 믿어야 할 것이다.” 세례는 받았지만 껍데기 교인수준이었던 그가 진짜 교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한센병환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게 되었다. 포사이드 선교사님의 헌신을 계기로 한국 최초의 한센병 전문병원인 광주나병원이 시작되었고, 후에 최흥종은 북문밖교회(현 광주중앙교회) 목회자가 되어 광주나병원과 사회 복지사업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포사이드 선교사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선교사님의 사랑과 헌신을 보면서 내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믿음도 없는 그에게 믿음만이 정답이고 만병통치약이라면서 내밀었으니 통할 리가 만무했고, 내가 내민 처방전에는 포사이드 선교사님이 보여준 사랑이라는 약 성분이 없었던 것이다. 믿음을 빙자하여 좀더 편하게, 손해 안 보고, 또 희생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예수님 뒤에 숨어서 회피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언제쯤이나 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내 이웃의 고통을 진심으로 보듬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기도한다. 주님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주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