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같은 사람

주일 오후, 유치부 꼬마 아이가 지우개가 달린 뭉툭한 연필을 연필깎이로 깎으면서 마냥 신나했다. 환한 얼굴로 연필을 깎는 아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는데, 한 할머니가 손자에게 연필 같은 사람이 되라고 들려주던 교훈이 떠올랐다.

연필에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어. 그걸 네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게야. 첫 번째 특징은 말이다. 네가 장차 커서 큰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주는 거란다. 명심하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분은 언제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두 번째는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야.

세 번째는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점이란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지.

네 번째는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라는 거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연필이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야. 마찬가지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렴.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첫째, 내 인생의 설계자가 주님이심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종종 이러한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면서 주님은 내가 기도의 손을 문지를 때 내 소원만 들어주면 그만이다. 세상을 거슬러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건만,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는 왠지 손해 보는 듯하고 어렵다. 그래서 편하고 쉬운 길을 찾다가 곁길로 빠질 때가 많다. 정욕의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번개를 맞으면 그제야 모두가 제 탓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면서 몸을 납작 엎드린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친 광야나 불구덩이 가운데 던져질지라도 겁내지 말아야 한다. 넘어질지라도 강하게 붙드시는 주님의 손길이 있다. 내가 어딜 가든지 무얼 하든지 매일매일 나를 보호하시고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음껏 내 마음을 설계하시도록 맡겨 드려야 한다.

둘째는 무디어진 영혼의 심을 예리하게 깎아야 한다. 습관적으로 사역이나 영적 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영혼이 무디어진 것조차 모를 때가 있다.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천천히 연필을 깎아야 한다.

아무도 나의 아픔과 수고를 눈여겨보지도 않고, 다 쓰다 버려진 몽당연필이 된 듯, 외딴섬에 홀로 유배된 듯한 환경에 처할 때도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때도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결코 멈추어진 시간이 아니다. 당장은 좀 쓰라리고 아파도 영혼의 심을 더 예리하게 사용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간이다.

나의 기쁨은 고통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은 어둠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나를 감추는 것이고 나는 낮추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은 유일한 나의 사랑이신 예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나의 기쁨은 작은 자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눈물을 흘릴지라도 나의 기쁨은 이 눈물을 잘 감추는 것입니다. ! 꽃들로 고통을 가릴 줄 알 때 고통은 어쩜 그리 매력이 있는지요. 나의 기쁨은 내 마음이 유배되었을 때 생긋 웃는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소화 테레사의 고백처럼, 홀로 유배된 것 같은 아픔 속에서도 미소를 보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마음이 불안하면 연필이 잘 깎이지 않는다. 투박하기 그지없다. 칼은 도끼질하듯 연필을 깎아낸다. 그리고는 마무리도 없다. 그냥 연필심만 보이면 끝이다. 거친 광야 길에서 감정과 환경에 따라 나의 영혼을 투박하게 깎고 있지는 않은지. 예리한 밝은 빛 말씀의 칼은 갈지도 않은 채, 대충 흉내만 내는 바리새인은 아닌지 깊이 돌아봐야 할 때다.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41:15). 날카로운 하나님의 새 도구가 되기 위하여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연필심이 닳으면 깎고 또 깎고 하는 것처럼, 길고 긴 광야 길에서 거친 모래바람에 닳아 무디어진 영혼의 심을 깎고 또 깎아야 한다. 때로는 연필심이 뚝하고 부러지듯,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도 인내로 감내해야 한다. 그 누구도 닳지 않는 심은 없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깎이는 아픔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셋째는 자주 실수하는 나를 위로하자. 누구나 완벽한 이는 없다. 수많은 실수를 거듭한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존심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잘못된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도리어 자신의 실수를 꽁꽁 숨기려다가 더 큰 낭패를 당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나의 실수와 부족한 점을 가시로 꼭꼭 찔러댈 때 변명하지 말자. 이는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묘약이다.

겸손이란 나는 실수투성이라고 생각하거나 고백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할 때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라고 테레사는 말한다. 임종을 두 달 앞둔 그녀의 병상을 지키던 둘째 언니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후 내 잘못을 스스로 책망하면서 실망을 느끼게 된다.”고 고백하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결코 실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슨 잘못을 저질러 슬프게 되면, 그것은 제가 불충실한 탓인 줄 잘 압니다. 하지만 제가, 거기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저는 급히 달려가서 주님께 아룁니다. `주님, 이 슬픈 기분은 마땅히 제가 받을 것인 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사랑으로 보내주신 시련으로 달게 여겨 당신께 바치게 해주십시오. 제가 한 행동에 대해서 저는 어디까지나 기뻐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아뢴답니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수 때문에 더 이상 움츠려들거나 숨지 말자. 겸손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고침받자. 그 어떤 허물과 과오라도 고치시는 보혈의 지우개가 있음을 기억하자. 나를 위로하며 회개한 것들을 잊어주자. 그리고 힘을 내자.

넷째는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심이듯, 내면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바깥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을 놓치기가 쉽다. 호랑이(교만), (거짓), 여우(질투), 돼지(아집), 염소(음란), 자라(태만), 공작(교만)과 같은 짐승의 소리가 들리고 있지는 않은가. 순간순간 깨어서 내면에 지극히 작은 죄의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말고 철저히 회개하자. 양심의 등불을 온전히 밝히고 주님의 음성에 온전히 순종하는 그날까지 쉼 없이 귀를 쫑긋 세우자.

마지막으로 연필이 흔적을 남기듯 내가 행한 모든 일이 이 땅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낱낱이 기록됨을 명심하자. 오늘 하루 난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하나님을 순간순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영혼이 온전해지는 그날까지 더 부서지고 깎여야 하리라, 연필처럼.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