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강해 16회

제 4장: 7년 환난을 수행할 천상낙원의 모습(계 4:1-11)

    4,5장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성령님의 인도로 그의  영이 천상으로 옮기어져 앞으로 7년 환난을 주도할 천상낙원의 모습 을 본 것이다. 4장은 환난을 주도 할 본부의 모습이며, 5장을 주도할 분이  누구인가를 소개 하시고 있다.

1. 천상의 모습을 보게 되는 사도 요한: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 에 마땅히 될 일을 내 가 네게 보이리라 하 시더라."(1절)
'이 일 후에' 앞장에서 기록한 계시를 받은 후에 다른 계시를 받는 것을 연결시켜 주시는 말씀이다.  성령님께서 사도 요한의 영을 이끄시어 '하늘의 열린 문'을 통과하여 천상낙원에 들어가서 '장차 될 일'을 보여 주시고자 하신다. 어떤 학자들(세대주의 전천설)은 교회에 대한 말씀이 3장까지만 기록되어 있어 교회 시대가 끝난 것으로 보고 또 사도 요한이 교회의 대표로 생각하고  '이리로 올라오라'는 교회의 휴거임을 주장한다. 잘못된 해석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휴거는 교회시대가 끝날 때 일어난다.
2)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신 말씀이 입증해 주신다. 곧 하나님께서 장차 될 일을 보여 주시기 위해 하늘로 이끌어 들인 것이다.
3) 소리로써 구별이 된다. 휴거가 될 때 하늘의 나팔 소리가 난다.(살전4:16) 그러나 본문은 나팔 소리 같은 음성 곧 예수님의 음성이다.
4) 장면으로서 구별이 된다. 휴거 사건 전에 선행되는 사건으로 예수님께서 강림을 하신다.(살전4:16) 그러나 본문은 전혀 예수님의 강림에 대해 언급이 없고 실제 강림은 아마겟돈 전쟁 때에 하신다.(계19:11)
5) 내용으로 구별이 된다. 휴거 사건은 준비된 자의 전체적인 사건이다.(살전16-17) 그러나 여기 사도 요한의 개인적인 사건이다.

참고: 입신이란 육체 안에 있는 영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영계 안으로 들어가는 체험이다.
예: 사도 바울의 체험(고후 12:2-4)

그럼 왜 하늘로 이끄시어 천상의 모습을 보여주셨는가?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변화산에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하늘의 영광을 보여 주셨던 것 같이 로마 정부의 박해를 받고 있는 초대 교회 성도들과 사도 요한에게 또 장차 환난을 당한 성도들에게 하늘 보좌 영광을 보여 줌으로 위로와 용기와 천국의 확신과 소망을 주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서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케 하려는 차원 높은 하나님의 뜻이시다.
마음속에 확신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맴돌다가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우리 인생에게 있어 가장 큰 소망은 영생인 천국이다. 사실 악으로 엉켜있는 세상에서 천국을 소망 갖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장차 펼쳐질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에서의 소망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기에 이 땅에서의 고통과 시련이 더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소망을 갖는 성도에게 먼 훗날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비밀조차 펼쳐 보여  주실 것이다.
'열린 문'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사람에게 보이시기 위해 열어 놓은 계시의 문이다. 이 열린 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베델에서 야곱에게(창 28:12-17), 에스겔에게(겔 1:1), 예수님에게(마 3:13), 스테반에게(행 7:5,6), 베드로에게(행 10:11), 사도 바울에게(고후 12: 1-4)열어 보이셨다. 하나님은 자기 마음에 합한 자, 성령에 감동한 자들에게 이처럼 천국 문을 열어 보여주시곤 하셨다.  
이 천국 문을 보기를 원하는가? 이를 위해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하며(히 11:1,13), 기도하여야 하며(눅 9:28-31) 그리고 거듭난 체험(요 3:3) 곧 우리가 그를 진심으로 내 영혼에 받아들일 때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우리 안에 여러 계시로 천국의 비밀을 알려 주실 것이다.(계 3:20)

2.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의 모습

"앉으신 이 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3절) 여기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이 보석과 같다는 것은
백옥: 하나님의 거룩성
홍보석: 하나님의 공의성
녹보석: 하나님의 신실성
        나타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존귀함을 보여 주시고 있다.
'무지개가 둘렸다'는 것은 무지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으로(창9:13)로 앞으로 마땅히 될 일을 보여 주시고 그 보여 주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결과 그의 소원 인 이삭을  얻고  믿음의 조상이 되지 않았나!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들을 책임지시고 이루어 주실 것이다.
또계시록은 환란과 사후의 세게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있다. 이 말씀을 대할 때 많은 분들은 두려워 한다. 두려워 떠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약의 백성이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또 성화되어 가고 천국 유업을 약속으로 받았다. 그러므로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힘차게 전진을 해야 한다.

3. 보좌의 24 장로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 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4절)
여기 보좌의 24 장로들을 소개 하시고 있다. 성경에 4가지 보좌가 나온다: 1) 하나님의 보좌, 2) 24장로의 보좌, 3) 짐승의 보좌(계16:10) 그리고 백보좌(심판의 보좌)(계20:4)
하늘 보좌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과 금면류관을 쓰고 있다. 흰옷은 행실이 정결케 됨과 의롭게 됨을 말씀하시며, 면류관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의미한다.
그럼 이들은 누구인가?  어떤 학자는 전체 교회로 보고 있으며, 혹자는 천사라 한다. 그러나 천사가 면류관을 쓰고 있는 못습은 없다. 그리고 다수의 학자들은 신약의 12사도와 구약의 12족장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잘못된 해석들이다. 12사도가 24장로에 포함이 된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도 요한도 함께 그 보좌에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보좌에 요한은 앉아있지 않고 보고 있다.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았다', '흰옷을 입고'(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금면류관을 쓰고'(빌라델피아 교회의 사자에게) 보좌에 앉은 것(계3;21;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을 볼 때 앞서 교회시대의 이긴자들을 살펴본 것과 같이 24장로의 자격은 예수님께서 이기시고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구약시대의 사람으로서 즉 아브라함부터 세례 요한까지 이 세상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을 지키어 이긴자로서 면류관을 받은 의인된 믿음의 선진들이다. 아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욥, 다윗,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에레미아, 다니엘, 호세아, 세례요한 등이 아니겠나?

적용; 장로 등 직분으로 보좌에 앉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야 보좌에 앉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거친 환경과 마귀와 정욕,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 천국은 침로하는 자의 것이다.

4. 보좌의 일곱 영

5절에서 나오는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을 켠 하나님의 일곱의 영"이 누구인가? '일 곱 영'은 앞서 언급했듯이(계1:4) 천사들을 대표하는 일곱 천사장들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직무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한다.
본 절에서 그들을 '일곱 등불'이라고 한 것은 어둠의 세력인 악령들로부터 교회와 성도를 보호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빛으로 단장되어 있기 때문에 '등불'이라고 한다.(단10:5,6; 히데겔 강가에서의 환상) (실제 사진으로 찍혀 나온 천사의 모습을 볼 때 불빛으로 보인다. - 천국의 비밀, 홍의봉, 부록에 실린 사진)
요한 계시록에서 일곱 영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곳이 많이 있다. 이를 성령님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아니다. 먼저, 1: 4에서 일곱 영이 보좌 앞에 있다 하셨다. 만약 이들이 성령님이라면 하나님의 보좌 앞이 아닌 보좌 위에 계셔야 한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하나, 둘, 셋……. 일곱으로 나눌 수 없다. 이것은 삼위일체론에 비추어 큰 잘못이다.

참고: 일곱 영과 일곱별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실 때의 예수님의 모습에서(계 3: 1) '예수님께서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셨다'라고 하셨는데 여기 두 종류의 사역자들을 말씀하신다. 일곱 영은 영계의 사역자인 천사이며, 일곱별은 이 세상에서 봉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다. 5:6에서 ‘어린양의 일곱 눈이 일곱 영’이라 하셨는데 ‘이들은 온 땅 에 보내심을 받은’ 일곱 천사장들을 가리켜 말한다. 히브리서 1:14에서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으로서 구원을 받은 후사들을 섬기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셨다. 천사들의 역할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돕는 역할을 한다. 곧 천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

   5. 천상의 네 생물(6-8절)

    6-8절에서 또 보좌 주위에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얼굴이 사람 같고', '독수리 같고' 또 '앞뒤로 눈이 가득하고', 그리고 각각 여섯 날개에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한 네 생물들이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예화: 천상에서 4 생물을 본 성도님의 간증
우리가 상상해 볼 때 해괴망측하게 보이는 이 네 생물이 무엇일까?
    어떤 학자들은 어거스틴의 주장에 따라 네 생물이 사복음서의 독특한 성격을 잘 나타낸다 하여 네 복음서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즉 마태복음은 사자 복음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마5:5), 마가복음은 소의 복음, 누가복음은 사람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은 독수리복음이라고 한다. 무리한 해석이다. 또 어떤 신학자는 4 명의 사도라고 한다.사도를 차별할 수가 없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천사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그룹(Cherub)(겔1장)이라 하며, 또 어떤 이는 스랍(Seraphim)(사6: 2)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모습이 각각 다르다. 무리하게 해석을 할 것 없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네 생물'이라고 그대로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네 ‘생물’이라 말씀을 하셨으니 피조물임에 틀림이 없고, 흔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피조물을 표현하실 때 ‘짐승’, ‘황충’ 등 악이 서린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그렇지 않은 점을 보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하는 영물인 영계의 사역자들이다.
   그들이 하는 일: 눈이 앞과 뒤 그리고 주위에 눈이 가득한 것은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감찰하는 기능을 말한다. 즉 사자는 야생짐승을 대표함으로 '사자 같은 생물'은 모든 야생 동물을 관리하는 영물, '소 같은 생물' 가죽을 주관하는 영물, '사람 같은 영물'은 사람을 관리하는 생물, '독수리 같은 생물은 날짐승을 관리하는 영물로 이해가 된다.

    하나님께서 이런 역할하는 자들이 필요할까?

    예: 아합왕과 여호사밧이 동맹하여 아람과의 전쟁 때에 길르앗 야못에서 나타난 거짓말          을 집어 넣는 천사가 있다.
    예; 사단이 (욥1:6)을 정죄할 때    - 하늘의 참모회의 같다.
   이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만물을 주관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특히 보필하는 네 생물들이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고 밤낮 쉬지 않고‘ 있다 하셨으니 부단히 깨어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도 이들처럼 맡긴바 사명을 철저하게 잘 감당을 해야 한다.

   6. 찬양을 드리는 천상의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

   계4:8-11절에서 이십 사 장로들과 네 생물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모습이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찬양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를 알 수 있다.
    1) 찬양의 자세: 첫째, 찬양하는 자는 '밤낮 쉬지 않고' 찬양을 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에 좌우되어 찬양을 해서는 안된다.  
   둘째, 매우 겸손하고 경건하게 찬양을 드려야 한다. 찬양을 받는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크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십 사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드리고 있다. 항상 우리는 예를 드릴 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요4:23)
   셋째, 면류관을 던지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거룩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이십 사 장로들이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찬양을 했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찬양을 해야 한다.
   2) 찬양의 근거: 하나님은 전능하시며,('전능한 자'는 본서에서 9회나 사용되었다.) 영원하시며, 창조주이시며, 또한 만물을 보호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하나님만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말씀하신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닌 자기중심의 예배인 것을 많이 본다. “교회에 은혜를 받으러 가자.” “오늘 예배에서 은혜를 받았다. “라는 말에서 이점을 잘 알 수 있다. 내가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배’ 자체에서 말해 주듯이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이점이 빠지면 진정한 예배가 되지 않는다.

예화: 지성인과 돼지